2008년 10월 19일 일요일

2008-10-20 비몽


 

예전부터 느꼈던 건데, 김기덕 영화는 나를 화나게 한다. 먹고 싶지 않은 걸 억지로 삼키는 기분, 마치 강간당할 때와 흡사하다.

그에게는 보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재능이 있다고 간혹 생각했었다. 만일 그가 좀 더 웃길 줄 안다면, 좀 더 아름다웠다면

그런 폭력을 즐길 수도 있을텐데. 그 역시 스탠리 큐브릭 만큼이나 미쳤다는 점에서는 동의하니까; 근데 그는 템포란 걸 모르나

보다. 너무 우직해서 나같은 소녀 감수성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최근에 그가 썼다는 [영화는 영화다]는 그래서 조마조마한 심정

으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는데…….

 

[비몽]의 영상은 아름답다. 다만 아름다운 동영상은 될 수 있을지언정, 아름다운 '영화'는 아니라고 느껴진다. 이나영과 오다기리

죠가 출연했다는데 어디 나왔는지 모르겠다. 여기에는 김기덕 냄새만 나지, 사람 냄새는 나지 않는다. 의도적인 거리두기라고 생각

될 정도. 한국적(동양적)인 분위기를 내는 소재나 설정이 많이 등장하지만- 인사동 대신에 차이나타운, 한복 대신 기모노, 목각판화

대신 18세기 식자공, 절 대신 이슬람 사원으로 해도 무방한 무국적인 배경 그리고 혈연지연학연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인물의 설정.

일본어와 한국어가 영화 속 인물들끼리 통용되도록 했으면서 오다기리 죠는 100% 일본인의 습성을 유지하고 있어, 사회적인 인간

이라면 느낄 문화적인 갭 따위를 가뿐하게 넘긴다. 게다가 영화에서 유일하게 등장인물 간에 마찰이 진행되는 이나영-오다기리 죠의

실랑이를 보고 있으면 연기를 하는 그들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서, 예쁜 인형들이네, 라는 생각까지.

예전에 소설에서 인간 대신에 사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딱 그런 소설을 읽을 때처럼 지루한 쇼크들이 이어지는.

[시계태엽오렌지]나 최소한 [카페 비너스]만큼이라도 엉망진창이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뭐 음악은

상투적, 꿈-현실 간의 교차방법도 재연드라마와 다를 게 없고, 스토리텔링도 무지 불친절해서 감독이 보여주는 대로 끄덕끄덕하며

보아야 할 것 같은, 아리송한데 좀 불편한 심기가 보는 내내 이어진다.

 

뭐, 그건 좋다. 김기덕 영화에서 로맨틱이나 멜로를 기대한 건 아니니까. 또 이야기 대신 이미지를 강조한 영화라도 괜찮다.

작가주의에 충실한 비급 실험영화, 이니까. 셋 다 내가 좋아하는 코드인데 왜 이러지. -_-

 

지나친 자의식 과잉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건 자기혐오와 동급, 나에겐. 그래서 이 글도 같은 감성으로 쓰고 있지만.

어차피 죽을 사람이 뭐하러 자해를 했나 싶다. 어차피 신내림 받아야 할 소녀-여성-인형이 뭐하러 저항했나 싶다.

전형적인 인물들만 등장하고, 강요된 과정과,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결말. 종교와 동떨어져가는 세계가 그에겐 이와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이었나? 그의 영화 속 현실은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으로 가득 차 있는데, 수갑이 당연한듯 사랑의 표상이 되고,

광기를 가둔 병원에서 탈출할 수단이 당연하게 죽음이고 - 그 이후는 어떤 만남이 당연히 예정되어 있고, 그걸 아는 그의 분신은

나비를 삼키는 모습을 탐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 영화는 꿈이다, 라고 말하는 게 들리는 것 같다.

 

글쎄, 난 꿈을 꾸지 않아서 실감이 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 꿈풀이에 대해서도 더는 모르겠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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