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순간적으로 그렇구나 라고, 혹은 한 10초쯤 들여다봐도 전혀 모르겠어 라고, 지나치고 싶은 사물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드라마가 있고, 음악이 있는 - 그걸 플로우라고 불러도 될까요 - 한 작품이 온오프될때까지 죽치고 지켜볼 수 있는 것들을 좋아해요.
시립미술관은 두번 갔었어요. 전체를 두번으로 나누어 봤는데 - 왜냐하면 최대한 한 작품이 있는 공간에 오래 머무르려다 보니깐
정신이랑 눈이 너무 지쳐서; 작업들이 다들 번쩍번쩍하니; 그렇다고 안내시스템이나 사전정보도 없이 그냥 부딪쳤기에- 그게 생생해서 좋거든요.
1층에서 본 [그림자 놀이]는 첫인상이 소위 말하는 프랑스 영화 같은 (누벨바그던가 - 그 중 하나 좋아했던 작품이 [나쁜 피]란 거였는데) 느낌이 나서 편하게 볼 수 있었어요.
그림자 놀이라면 보통 유희적이고 밝은 느낌을 갖지만 전 좀 그림자의 본질이나 이중성 같은 어두운 주제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는데 -_-
작품은 서로 만나고 싶어하는 남녀의 스토리가 (역시 인간 내면의 양성성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연상되도록 진행되어서 호기심을 유지할 수 있었죠.
작품이 플레이되는 동안 흐르는 피아노 반주도 그림자의 동작이나 분위기에 적절하게 들렸고요.
또 보통 그림자 놀이하면 하얀 장막 뒤에 본체가 있거나, 커다란 스크린일 경우에는 빛 바로 앞에 본체가 있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중앙에 하얀 장막을 걸어놓고, 하얀 장막의 양쪽으로 그림자들이 플레이 되지만- 장막 양쪽으로 반사각이 될만한 바닥의 위치에도 각각 그림자들이 보이거든요.
그건 네 개의 빔을 동시에 사용하는, 놀이에 있어서 룰 위반, 방식이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졌거든요.
그림자들의 액션들도 은근히 귀여웠고 (가령 기다리다 약간 지루해졌는지 발가락을 쫙 펴며 기지개? 하는 여자의 모습이 기억이 나네요)
남자와 여자가 만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제외하고는 그외의 소품들은 전부 스위치가 가능하거든요.
탁자, 의자. 와인, 글라스, 담배, 재털이... 나중에는 그래서,
(...어쩌면 그저, 서로 술을 몰래 마시는 이야기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단지 들키지 않기 위해 신경쓰는 사이...)
그 둘은 서로 전혀, 시간적으로도, 관계가 없는 사람들인데 단지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착각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스스로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3층의 [진동]은 아주 짧게 봤지만 (그때 좀 지쳐있었어요;) 그래도 인상에 강하게 남아서 몇자 적어 봅니다.
공포영화 같았거든요.
롱테이크로 넓고 황폐한 배경 멀리 건물 같은 게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고 그때마다 우르릉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립니다.
그리고 전혀 원근법 따위 신경쓰지 않는 사람(?) 형체들이 화면에서 사선으로 점점 다가옵니다.
안그래도 잡티 가득한 영상인데 그 형체들 속에는 악령에 빙의된 텔레비전처럼 혼잡한 무늬들이 진동합니다.
이 정도? 잠깐 봤습니다.
안그래도 전 진동이라는 키워드는 좋아하거든요.
제목은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게 물론 이렇게 글이 되도록 강화시키긴 했지만, 그냥 작품 자체의 이미지가 줬던 느낌으로도 인상 깊었어요.
음.. 실레의 그림이 좀 살이 쪘다고 해야하나? 베이컨의 그림을 애니메이트하면 그런 느낌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어젠가, 앨리스 모임 후에 만화책방에서 극락사과왕 찾다가 품절이어서 (...) 오츠이치의 GOTH를 집었거든요.
GOTH란 키워드를 듣고 나서, 지금 생각나는 건데, 꼭 그런 이토준지처럼 속눈썹 예쁜 얼굴과 9등신 몸만이 고쓰는 아니구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도 될 수 있구나, 라는 복선이 된 개인적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 개인적인 취향이었나요;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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