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0일 월요일

상대적인 적

 

확실히 난 혼자서는 못하는 타입. 조직이나 파트너에 기댄다기 보다는, 최소한 적은 필요하다는 말.

부정해야 할 것, 망가트려야 할 것, 죽여야 할 것, 바꿔야 할 것, 그런게 필요하나 보네.

 

최소한 혼자말이나 그리움만으로도 노래는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만의 춤은 자기도취는 그 순간 내가 느끼는 만큼만의 영역에서만 아름다울 뿐,

훗날 취기에서 깨어났을 때, 혹은 자신의 시야가 넓어졌을 때, 부끄러움이.

아마 나와 전혀 상관없는 누군가가 나를 본다면 그렇게 낯설지도 모르죠.

하지만 난 그걸, 자폐라면 추악한 어린이, 강요라면 악마라고 느끼니까.

 

하나이고 완전한 빛에 금을 내어 구분하고 파괴하는 걸 악마라고 했다는데,

모든 걸 연결하고 싶어하는 이 세상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걸까.

애초에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 프로젝트, 과거처럼 하나의 기치를, 대척점을 상대하지

않아도 좋은 흐름. 그렇다면 내가 던지는 질문들도 그 흐름에 영향을 주겠지.

최소한 내 자신에게는 말야. 나에겐 복종하고 싶은 진실도 없고, 부정하고 싶은

거짓도 없어요. 신도 악마도 다 가련할 뿐이고, 차라리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는 조금 더 곤혹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걸요.

 

확실히 미움받으려면, 확실히 사랑해야겠지...?

 

사랑하는 건 나 자신밖에 없으니, 다른 대안은 찾을 수 없으니,

적이라도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요즘 내가 가장 죽이고 싶은 것에 대해 말해보자.

난 순진함이 가장 싫어요. 왜냐하면 나를 부끄럽게 하니까.

무엇을 위해 난 있는 그대로 가만히 있고 싶어할까요.

그저 예쁜 척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면, 일단은 편하니까?

아, 그 보다는… 일단, '믿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내 육체의 확실성 만큼이나,

언제나 동일한 값을 가지는 감각만큼이나,

내가 판단근거로 삼고 있는 체험만큼이나,

그런 걸 대체할 정도로 강렬한 어떤 것이 있다면,

난 나를 트랜스 하는 것 쯤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데요.

 

다만, 그런 게 별로 없다는 게 흠이지.

꽤나 믿음에 요즘 굶주려 있는 것 같애.

 

나에게 자아란 게 있다면, 꽤나 비약적으로 출발했다는 건 인정해.

어쩌면 내가 좋아하던 것들의 짜집기에 불과하다는 것도.

하지만 난 그걸 내 근거로 뿌리내리기 보다는 다른 이미지로

치환하고 싶었으니까, 어디쯤엔가 실이 끊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지평을 넓히고 싶다는 욕심만 있었지, 다른 지평과의 연계에

대해서는 무신경했으니까.

 

결국은 내가 믿었던 것들은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음악은 감정이나 맥박을 확인시켜 준다.

그 역시 순간적인 파동이라 그걸 바탕으로 무언가 구현시키기에는

다른 언어가 필요해지거든요.

 

전요, 모든 자극에 순진하게 반응했고, 그럼으로써 호기심 많은 태도를

획득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좀 더 싸늘한 방식이 필요해요.

그렇다고 내가 당했던 것처럼 폭력적인 방법으로 복수하고 싶지는 않아.

복수는 관계맺음에서 가장 저질이고, 난 솔직히 반전을 좋아하니까.

 

일단 가짜가 되는 방식이 있겠지. 끊임없이 자신을 스위칭하는 방식.

또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헤아려 보는 것도 있겠지.

또 현실을 대신할 만한 크기의 환영이 되는 방식도 있겠지.

그런데 여기엔 방향성이 없어서 맘이 껄끄러워요.

전 순진한 행동주의자는 아니거든요.

 

무엇인가 미워한다고 계속 되뇌이기.

사랑한다고,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되뇌이기.

그런 차단 방식은 위험하거든요.

난 내가 냉소적으로 변하는 시간이 무섭고 부끄럽다.

 

순진함을 대신하여 베이스가 될만한 감정이 필요해.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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