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로 시마다 씨의 책은 네번째다. 운 좋게도 어느 분이 수집한 시마다 책들을 한번에 구할 수 있었다.
왜 고등학교 때 하루키만 알았는지 후회가 된다. 그를 알았다면 내 인생은 좀 더 변했을 거다.
뻔뻔해졌겠지. 하루키처럼 포즈를 취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괴상망측하지만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소녀적인 치기가 느껴져서 난 그를 좋아한다. 데카당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기운을 잃은 늙은이들의 추잡스럽고 구차해 보이는 행위나 언술들은 나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자신과 타인이 다를 뿐인데, 그걸 우월감으로 착각하는 자아도취 예술지상주의자도
정나미가 떨어지긴 마찬가지. 차라리 사드처럼 폭군이 되려는 의지를 보여줘라. 그럼 난 저항할테니.
위스망스처럼 변절자가 되어 봐라. 그럼 난 서커스장의 곡예사를 보듯이 응원해주겠다. 그것도 아니면,
다카하시처럼 절망과 폭소에 나를 집어 넣어라. 그 정도 기분이면 나는 나를 산산조각낼 보람이 생긴다.
하지만 시마다는 나에게 약간 다른 느낌이다. 그에게는 그리움을 떠올릴 수 있다. 그렇게 제멋대로면서
부드러운 면이 있다니, 부럽다. 어쩌면 내가 그를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내 이야기를 죽일 필요
까진 없었을지도. 내 부드러운 면은 다 죽어버렸다. 얼마 전에 니체의 만가를 다시 읽어 보았다. 솔직히
난 울고 싶었다. 수치심이 날 가로막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런 섣부른 동일화에 대한 경계가 날 망설이게
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난 나의 의지를 믿고 싶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건 강한
감정이 느껴지게 하는 것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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