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30일 수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12월 31일

  • 이제 내가 마주하고 그릴 수 있는 음악만 들을 거야 감동따위 필요없어(me2mobile | diary) 2009-11-07 15:36:36
  • 오페라 미안해 ;;(chrome) 2009-11-07 22:04:35
  • 예쁘다.(me2book 몬드리안의 방: 신조형주의 새로운 삶을 위한 예술) 2009-11-11 08:44:01
    몬드리안의 방: 신조형주의 새로운 삶을 위한 예술
    몬드리안의 방: 신조형주의 새로운 삶을 위한 예술
  • 우리가 언제나 아이라면, 미디어는 태반이다.(diary) 2009-11-11 10:32:46
  • 내 본질은 표면에, 얼굴에, 스타일에 있어. 살아있는 한 변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그래도 그걸 움직이는 힘은 선택할 수 있어. 운명 혹은 다중 들에 부서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건 내 선택이야.(diary) 2009-11-12 00:09:17
  • 사려던 앨범은 누구 앨범발매했는지 긴 줄로 못 샀다 ;;;;;(me2book 잠자는 거리 혹은 가라앉는 지층 | 다이 요코) 2009-11-12 22:50:56
    잠자는 거리 혹은 가라앉는 지층
    잠자는 거리 혹은 가라앉는 지층
  • 이젠 노래를 불러볼까(me2mobile) 2009-11-23 08:13:56
  • 제작자 강우석.. 고수는 예쁘다.(me2movie 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2009-12-04 15:09:07
    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 산 여자는 죄인으로 만들고, 죽은 여자는 여신으로 만들고, 편집된 영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눈으로 하얗게 잃어버린 것을 편집하고 여신의 신탁을 기다리지만, 나에겐 늙고 잃어버린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리듬감은 좋았다.(me2movie 브로큰 임브레이스) 2009-12-04 15:13:26
    브로큰 임브레이스
    브로큰 임브레이스
  • 키티 단소(Kitty 포장이 예술) 2009-12-31 00:52:58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11월 7일에서 2009년 12월 31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11월 5일 목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11월 5일

  • 2권까지 읽은지 몇 달 만에, 사놓은지는 더 오래…. 무서웠지만, 너 거기 있었구나 ; 내 젊음은 이걸로 완결시켜도 좋겠다.(me2book 온 3 | 유시진) [ 2009-10-30 21:10:11 ]
    온 3
    온 3
  • 돈 받았다 >_<(월급은 아니고 | diary) [ 2009-10-30 21:14:28 ]
  • 화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문학은 비명으로 종사한다, 깊이없이.(me2mobile | literacy) [ 2009-10-31 07:38:03 ]
  • 거슬린다..(diary | ㅠㅠ) [ 2009-10-31 23:53:01 ]
  • Mi-Gu - lazy / Spiders / pulling from above (JICKBEATS Version) / from space(Mi-gu | Spiders | pulling from above | from space | lazy | music video | live | youtube | vimeo | SEAN LENNON | YUKA HONDA | YUKO ARAKI |스크랩) [ 2009-11-01 11:00:56 ]
  • 너무 느끼한 걸 먹으면 바로 허리에 지방이 감도는 느낌이 든다.(...) [ 2009-11-03 08:35:31 ]
  • 덴마크우유 900ml가 3100원 +_+(이마트;; 옵션으로 요플레;;;) [ 2009-11-04 22:14:23 ]
  • 아… 시키지도 않은 거 하는 프로그램 질색인데.(Itune) [ 2009-11-04 22:25:12 ]
  • re : 전엔 eng, 요즘은 usa ;(music in the rain | relay) [ 2009-11-05 22:03:38 ]
  • re : 연말은 빼야죠. 내년엔 좀 가볍게, 사랑에 빠지거나 공부에 빠지려구요. 살, 일은 좀 빠지면 좋겠어요. ho님의 연말… 아니 겨울(ㅋㅋ)계획은 어떠신가요.(finale | relay | winter) [ 2009-11-05 22:16:05 ]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10월 30일에서 2009년 11월 5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10월 29일 목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30일

  • 아.. 그래도 역시 일은 사람이랑 해야해.(재밌어 work diary) [ 2009-10-15 00:07:19 ]
  • 이젠 야행성도 아닌 게(자기소개 | 변온동물) [ 2009-10-15 00:20:43 ]
  • 위가 과녁처럼 아프다; 심장이 하나 늘어난 것 같아.(diary) [ 2009-10-20 10:30:11 ]
  • 초중반 이후 내내 울면서 봤다 ; 모든 코드와 플롯은 파토스를 위한 것, 그 압력은 카메라의 시선으로 조절된다. 크레딧 오르면서 바로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자유로로 퇴근하면서 서우의 모습이 겹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me2movie 파주 | diary) [ 2009-10-21 03:10:50 ]
    파주
    파주
  • 자금성紫禁城의 영어 표기는, 출입금지 도시Forbidden City(자금성 Forbidden City) [ 2009-10-21 11:59:10 ]
  • Slagsmålsklubben - His morning promenade : 음… 게임을 매체로 생각하는 건 역시 아날로그다.(Slagsmålsklubben | music video | animation | His morning promenade | myspace) [ 2009-10-25 00:48:59 ]
  • Slagsmålsklubben - Sponsored by destiny(Slagsmålsklubben | music video | animation | Sponsored by destiny | vimeo) [ 2009-10-25 00:58:38 ]
  • 92년에 나왔다고 한다;(me2book 쿠스모토 마키 선집. 2) [ 2009-10-25 21:37:35 ]
    쿠스모토 마키 선집. 2
    쿠스모토 마키 선집. 2
  • RE : 저에게 독립영화란… 독립보단 비급을 좋아하지만;; 임시정부도 필요하지만 핵무기도 필요한 것 같아요 ㅋㅋ …다음은 다함님이 수습해주세요~(독립영화 릴레이) [ 2009-10-27 12:28:22 ]
  • 헐… 타란티노. 이거 뭐야 몰라 무서워 살짝, 그래도 라디오 듣는 기분으로 봤다 ; 피트 목소리가 >_<(me2movie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 Quentin Tarantino | Inglourious Basterds) [ 2009-10-30 04:17:21 ]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10월 15일에서 2009년 10월 30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10월 24일 토요일

파주, 2009, 박찬옥.

영화를 필름이 뇌수에 스며든다고 표현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영상문법(?)에 대해 신비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 말은 영화가 심상이나 서사를 그리고 감각과 기법들을 종합적으로 전달하는 매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제 파주를 보며 그 말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물론 정치적이거나 섹슈얼리티 차원에서 읽어낼 수 있고, 그래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담화와 행위와 포착된 장소의 이야기들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건 영화 내에서 이용 가능한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걸 목표로 하기에는 너무 불편하다. 자기가 허상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걸 애써 현실과 같은 거라고 혹은 현실을 능가하는 영화적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기세가 없다.


모든 것이 용납될 것만 같다. 고전영화가 연상되는 ; 저예산삘(...), 오프닝의 촌스러움, 후시녹음한 것만 같은 목소리 등등의 레트로 감수성. 신화의 알레고리 ; 오이디푸스(혹은 그 딸)든 메시아든. 소녀라는 아이콘 ; 앨리스든 안드레센이든 심지어 베레니체든. 정치적이거나 철학적인 떡밥들... 따위가 뭐가 중요한데? 그것들이 논리나 이미지 혹은 감각 등 무엇에 근거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똑같이 기제로서 작용한다.


나에게 영화를 보는 경험은 권력에 지배 받는 것과 같다. 모든 게 용납될 것 같지만, 이미 예상된 것만 용납된다. 이 영화는 규칙에 무심하다. 위악적인 제스처조차 없다. 무심하게 유희하고, 집착은 해도 죽이지는 않는다. 제스처라는 건 실행자에겐 지속적인 움직이지만, 경험자에겐 순간적인 이미지다. 이제 나는 거기에 논리나 형태의 일관성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 사적인 리얼리즘이 잘 구현된 비유로서, 지금은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여기고 있지만...


영화를 경험하던 당시에는 마치 무서운 영화에 눈을 감아야 하는데 장면을 놓칠까봐 눈의 깜빡임조차 계산하며 보는 듯이 자신을 억누를 겨를도 없이 끌려다녔다. 첫인상은 불편한 영화였다. 그건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가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1/3 이후로는 내내 눈물을 흘리면서 보게 되었다. 간만에 감정의 선에만 빠질 수 있었다. 플롯이나 영상의 기교가 좋다는 뜻이 될 수도 있는데, 그조차 그냥 이 영화에서는 코드일 뿐이다.


오히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코드와 영화 내에서 발견한 코드들이 연결되고, 영화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 코드들이 서사로 구축될 때, 나는 영화가 보여주는 이미지를 어떤 세계의 재현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위안으로 삼게 된다. 코드는 벽돌이다. 그걸 모아서 벽을-형태를-쌓는 것은 나. 그러나 난 그 벽을 손끝으로 스치면서 지나간다. 그 미로에서 난 그렇게 출구를 찾으려 한다(혹은 내 행위가 패턴이 되길 바란다). 난 영원히 돌고도는 이야기를 믿고 싶지 않다(아니게 되면 감정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영화의 특별함이라면 날 그토록 감정에 매달리도록 몰아붙이면서, 과정에 겉멋이나 집착을 느끼지 못했음에도, 감정에 매달린 상태로 지나쳐버렸던 코드들을 재차 확인할 필요성이 없음에도, 그게 인간의 치유나 출구를 찾는 시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감정은 해소되지 않고, 언제든 재구성될 수 있는 현실은 달라졌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게 현실체계를 그대로 반영한 비유라고 할 수 있을까?


거기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난 그저 스크린과 나 사이의 긴장감이 좋았다. 끊어지기 직전까지 당겨진 그 실 위로 감정이 흐른다. 이 영화는 내가 생략법으로 말하는 감정들을 복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느낀 감정, 그 인간이 진짜 나는 아니고, 내가 느낀 감정이 다른 누군가가 만든 인간이고, 그 인간을 편집한 필름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그녀는 춤 출 수 있다. 그때 나에게 생략된 프레임을 채우기 위해서 눈물이 필요했다. 그러면 진짜 살아있다고 느낄지도 모르니까. 최소한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겠다고.


그저 이 영화에서 끝까지 나에게 시선을 거두지 않는 권력에 대한 애교였을지도 모르지만.


2009년 10월 13일 화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13일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10월 4일에서 2009년 10월 13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10월 1일 목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2일

  • 오랜만에 풀밭에 누웠다/;(me2mobile 물론 개천가 그늘 me2map)2009-09-23 13:15:23
  • 1년쯤? 전에 우연히 김호진 나오는 2편 보다가 재밌네 했던 기억난다. 따온 음악이 좋았던 부분이 있는데 기억이 안 난다 (…) 멜로의 막장은 지나가는 사람이 슬퍼 보여서 사랑에 빠지는 건데 ; 게다가 연작이네.(me2tv 살아가는 동안 후회할 줄 알면서 저지르는 일들 | 스크랩 | diary)2009-09-23 23:06:00
  • 발음하면 할수록 수상하고 미지근한 말이 늘어난다. 전엔 그냥 우박 맞는 정도였는데… 정말, 하고 밝게 되물을 기분이 나지 않고, 찌푸려지는 말 ; 하긴 항상 새롭게 느껴지는 것도 내 얼굴 밖에 없었다 ;(diary)2009-09-25 01:00:06
  • Le Loup - Planes Like Vultures(Le Loup | music video | The Throne of the Third Heaven of the Nations' Millennium General Assembly | Planes Like Vultures | vimeo | 스크랩)2009-09-25 23:15:29
  • PORCUPINE TREE - TIME FLIES(vimeo | PORCUPINE TREE | THE INCIDENT | TIME FLIES | music video | 스크랩)2009-09-26 18:51:50
  • ☆ dong1_4mang ☆(yebigun ;; diary 28-30 ;;)2009-09-28 04:48:00
  • 조니뎁은 좋은데(relay | 플로리스트가 잠깐 끌리긴 했었지;)2009-09-30 22:38:14
  • Time To Burn - Nayeli : 싫어하는 취향을 너무 잘 표현해줬다 ; 좋아하는 색과 형태 패턴인데, 그걸 움직이는 힘, 그러니까 저런 굶주린 촉수들 질색한다. 사실 싫어한다기 보단… 그런 타입엔 똑같이 갚아줘야 한다는 느낌에 가깝다.(Time To Burn | music video | Nayeli | vimeo | 취향 | diary)2009-09-30 23:17:23
  • 코믹스에 가깝다 : 쉽고 재밌게 코드를 버무렸지만 절제미는 있다 ; 범죄에 미학을 끌어들이면 게임이 되는데, 현실에 미학이 끼어들면 지옥이 된다. 앞쪽에 가까울수록 좋아한다.(me2book 사탕과자 탄환은 꿰뚫지 못해(양장) | 사쿠라바 카즈키)2009-10-02 00:13:48
    사탕과자 탄환은 꿰뚫지 못해(양장)
    사탕과자 탄환은 꿰뚫지 못해(양장)
  • 청소하고, 국박 들렀다가 시골 가야겠다.(미리 diary)2009-10-02 00:15:18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9월 23일에서 2009년 10월 2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9월 20일 일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9월 20일

  • Color Filter - Sleep In A Synchrotron(me2music [수입] Sleep In A Synchrotron Color Filter music video youtube PPT;)2009-09-15 00:17:28
    [수입] Sleep In A Synchrotron
    [수입] Sleep In A Synchrotron
  • The xx - Basic Space / Crystalised : ㅋㅋ 귀엽다.(The xx | music video | Basic Space | Crystalised | 스크랩 | site)2009-09-16 01:10:36
  • 가장 고전적인 것과 참신한 걸 함께 배웠어야 했는데‥ 역사적인 거 말고(me2mobile 교육;;)2009-09-16 17:24:12
  • 다음 SNS 같은 건 이미지로 교감하는 형태가 될까? 그 전에 즉각 반응할 기기가 필요하겠지만, 각자 뿌려놓은 말들을 책 정도의 레벨로 정리할만한 능력이 당연하게 되고, 개방성만큼 폐쇄성도 인정받아야겠지만, 그때까지 자아의 가치가 남아있다면 말이다.(diary | sns)2009-09-18 00:42:45
  • donawhale - 반딧불소년(me2music 도나웨일(Donawhale) - Dive to Blue | YouTube | music | live | 스크랩)2009-09-18 00:55:07
    도나웨일(Donawhale) - Dive to Blue
    도나웨일(Donawhale)  - Dive to Blue
  • L'Arc~En~Ciel - Niji(me2music L`Arc~en~Ciel - 虹 (Niji / 무지개) - Single | music | live | youtube)2009-09-18 02:43:19
    L`Arc~en~Ciel - 虹 (Niji / 무지개) - Single
    L`Arc~en~Ciel - 虹 (Niji / 무지개) - Single
  • Organ Mix : 재밌었다. 한적할 때 다시 가봐야지.(Organ Mix | 토탈미술관 | diary)2009-09-18 22:42:44
  • RE : 음… 옷 못 입는 사람? 몸과 마음 모두. 또… 기생하는 타입? 역시 마찬가지로. 글쎄, 요즘은 싫어한다는 걸 실감할 정도로 신경이 별로. 아… 거짓말을 잘 한다고 스스로 말하거나, 거짓말을 아예 못 한다고 말하는 식의, 그런 뻔한 답답함도 별로.(diary 취향;)2009-09-20 00:51:15
  • Aphex in Wonderland, pt. 1(Aphex twin | alice in wonderland | music video | animation | vimeo | Chosen Lords | Fenix Funk 5 | Nick Meador | 스크랩)2009-09-20 03:19:49
  • Toxicity by System of a Down(YouTube | cover | music | live | Toxicity | System of a Down | ??;;)2009-09-20 15:21:50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9월 15일에서 2009년 9월 20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9월 15일 화요일

소립자, 미셸 우에벡, 열린책들, 1998

 

오랜만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었다. 힘들더라.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 사람 글은 시점이 깨져있는데다가 그것 역시 별로 인간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인간적인 글을 좋아하는 건 아닌데, 다만 이 사람과는 입장이 다르다는 걸 내내 느꼈을 뿐이다. 또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야기로만 보지 말아달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사실 말미에 보니 그럴만한 근거는 갖고 있었지만 다른 작품은 보지 않아서 이 사람의 문체라고는 확신할 수 없겠다. 물론 이질감보다는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 사소한 거라면, 외양의 묘사 대신에 문화적인 코드나 상품 카달로그에 붙은 가격으로 사물을 설명하는 방식 같은 것? 가계도라거나 물질성과 같은 기존 세계의 개념으로 이야기를 형성해나가지만, 어느 순간 참았던 작가적인 본심이 터져버린다는 것? 그게 나쁜 타이밍은 아니라서 재밌게, 라기 보다는 흥미롭게 보았을 테지만, 하지만 그 조차도 의도된 약점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별로 이 사람의 진심은 알기 어려운 글이었다. 어느 비평가가 이 소설에 비하면 다른 소설들은 유치하다는 뉘앙스의 문구를 책 표지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그 말대로 시점의 거리가 꽤 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폴 오스터 이후의 감수성으로 현실을 푸코식으로 재해석하여 대체 미래를 그린 이야기로 느껴졌지만, 아마 읽는 사람마다 각자의 세계관에서 이야기 속으로 진입할만한 입구는 많이 열어놓은 장점은 있을 거다.

 

다만 그게 그 비평가 말대로 거대함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인정할 수 없다라는 쪽에 가깝다. 확실히 이 이야기의 출발점은 68 이후의 세대의 -  나는 누벨바그 영화로밖에 접하지 못했지만, 꽤나 좋아하던 그 세계의 후예의 - 성장이고, 그들이 거쳐나간 과정을 폴 오스터의 문팰리스가 미의식만으로 극복해버린 현실이라는 세계가 여전히 존재할 때 그걸 개인적 차원이 아닌 누구에게나 대입 가능한 공식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로 보여줬지만, 공감은 되지만 인정은 할 수 없었다. 그건 이 이야기가 허접하다는 게 아니라, 나에게는 별 필요 없다는 말이다. 내가 이걸 토대 삼아서 새로운 글을 쓰려고 하는 건 아닐 테니까. 나 역시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면서도, 아름다운 의지에 속하고 싶었고. 쾌락이 천박하게 소모되는 걸 혐오하면서도, 그 감각이 단순히 스타일만으로도 완성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그리고 욕망에 솔직해야 할 것을 말하면서도, 스스로의 욕망을 죽이려 애썼기도 하고. 그러나 니체나 보들레르나 사드에서 출발한 작가를 만나서 반갑기도 했고, 또 작가의 시점을 구현하는 체계라면 약간 반하기도 했다. 내가 소설을 못 써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꿈이라던가 사회이론 들먹이는 건 지겨웠지만, 그런 거슬림을 감싸는 작가의 시선은 참 어지럽게 자연스러웠다. 수식적인 아름다움은 아닌 것 같은데, 그 보다는 은밀한 의지가 살아있다고 느꼈다. 두 인물이 각기 두 손전등이라면, 그걸 가지고 밤길을 헤매는 누군가의 앞에서 안전하게 걷고 있는 느낌 ; 그런 지배받고 싶은 마음을 자극시키는 매력이 있었다. 

 

여기서 나는 이 글이 그런 지배 상태에서 독자를 쫒아내려는 의도로 작중 인물을 파괴시키면서 작가가 부각한 가치를 독자로 하여금 선택하게 만드는 글쓰기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음... 그건 내가 읽은 다음에 다시 책 속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기억이 났을 뿐이고, 실제로 이 이야기를 읽을 때는 그냥 술술 읽혔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 세계는 시마다 마사히코가 자기파멸적으로 부정한 세계였지만, 여기 인물들은 그럭저럭 사회 속에 숨어들어 잘 살아가더라. 현실로 말한다면 나 역시 이쪽이지만, 이상이라면 역시 저쪽이다. 그게 나에겐 거슬렸을 거다. 이 정도까지 구차하게 해야돼, 그런 느낌? 삶에서 내가 욕망을 완수하기 보다는 양식을 구현하는 쪽에 지금은 더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섹스가 욕망을 대변할 수 있다는 걸 난 더 이상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작가의 입장이라면 난 욕망은 섹스를 능가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자아라는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욕망을 약으로 제거한 다음에야 행복해하는 형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반대는 종교적인 세계가 될 거다. 죽음까지 능가하려는 욕망은 이 책에서 실현된다. 물론 그건 우리에게 익숙한 정신적인 종교는 아니지만... 과학적인 토대에서 출발하여 천국까지 실현한 종교라고 할까? 그걸 작가가 바라는지는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난 더 코어한 쪽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련다. 이 이야기에서 그게 단백질의 분자구조였다면 나에겐 감각, 그러니까 전기자극이다. 몸 전체가 크로이체 소자로 뒤덮인 인간이라... 그러면 더 민감해질까? 단순히 정보의 양이나 자극만으로 쾌락이 결정된다면, 현재의 이미지는 단지 그게 그 기제들을 권력이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라 그럴까? 난 받아들이는 입장이 더 먼저고, 그건 단순히 소화기관처럼 정렬하면 충분한 게 아니라, 감각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 감각을 재현할 코어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이야기의 체계를 맘에 들어한 이유는, 그게 현실에 있어서 실천 가능하기 때문일 거다. 하긴 벌써 2009년이 끝나간다. 이 책의 내용대로라면 새로운 사상이 이미 나왔어야 하나? 그런 식으로 현실이 진행될까? 우리에겐 더는 도플갱어에 대한 공포가 없을까. 개인이나 자유를 중시하는 것은 그저 자본일지도 모른다. 설령 그런 권력의 작동이 아니더라도, 우리들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서 무관심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그건 아닐 것 같다. ...어쨌든. 나에게 이 책의 미래를 긍정한다면, 그건 호기심이다. 나에게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감정. 사물에 호의를 갖지 않은 채로도 기다릴 수 있는 그 감정을, 나는 동일성이나 잘 작동하는 양식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에겐 특정한 규칙이 필요할까. 그러자면, 그걸 말하려면 긴 이야기가 필요할 거다. 지금에 있어서는 이 사람만큼이나 실천 가능한 어떤 양식과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다르다는 것만 확신한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2009년 9월 13일 일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9월 14일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9월 7일에서 2009년 9월 14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9월 10일 목요일

눈과 마음, 메를로 퐁티, 마음산책, 2008

니체 이후로 빠가 될 사람은 없었는데, 이 사람이라면 그렇게 될지도... 제대로 이해해서 공감해서 좋은 게 아니라, 그냥 문체의 울림이 좋다. 다만 니체는 원래 당김음을 잘 쓰고 번역을 해서 근육은 좀 망가지더라도 뼈대는 워낙 단단하니 우려내는 맛이라도 있었는데, 이 사람 글은 번역하다 자기 꼬리를 무는 문장이 돼버리는 프랑스에다 원래 스타일도 여백으로 환기되는 식이라, 에센스만 뽑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데카르트로 대변되는 결정론적 시각이 현실과 동떨어질 경우의 위험성에 대해 그는 염려한다. 또한 데카르트의 접근법 자체가 지나치게 주체와 대상을 분리시켰다는 것을 지적한다. 사실 그런 분리 자체가 이미 나에겐 잘못된 언어로 보이지만, 메를로-퐁티는 지금 내게 마조히스트로 남아있으며, 사실 현상학이라는 이론 자체가 선언상으로는 철이 지나고 한창 기술적으로 실현되는 단계라고 생각하니까, 별 상관 없겠다. 다만, 그래도 아직 이 책이 유효하다면 기존 세계를 이루던 관념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고전이 되고 진보의 한 단계로 인정되는 현실에서 적의 문법대로 복수할 수 있는 카미가제 역할로는 재밌겠다고 본다.

혹은 시지각을 종교적인 경지까지 승화시킬 정도로 그에 대한 사유를 진행하면서, 시지각 자체의 한계를 폭발적으로 드러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직 내가 그에 대해 읽은 건 이 책과 다른 소논문이 추가될 뿐이니, 아직은 기대감일 뿐이다. 또한 실행자의 입장에서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도 말하고 싶다. 이 책도 그렇고 곰브리치 경의 미술사를 보면서도 그랬는데, 동서양의 차이가 확실히 있다는 걸 느꼈다. 나 역시 메를로-퐁티의 주체와 객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심지어 동일할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기 보다는 그걸 내가 바란다고 해야)하지만, 주체가 객체를 보면서 선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그 모든 경계들이 무화되지 않을까. 어쩌면 그게 예전에 본 스기우라 고헤이의 형태의 탄생에서 말한 카타에 치가 깃드는 방식인데, 물론 메를로-퐁티 역시 관찰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방식이 주가 되어 있고, 나 역시 그들의 책을 토대로 말할 뿐이지만, 경험적으로는 다르다는 거다. 나와 사물들 각각의 거리도 시점에 따라 일정하지 않지만, 일대일 관계만 보더라도 나와 사물의 경계와 사물과 나의 경계는 일치하지 않는다. 서로의 교집합이 내 눈에 빛을 통하여 드러날 때, 그 경계는 스푸마토 같은 걸로 바꿔 말할 수 있는 그런 가장자리의 선일까. 아마 내가 선에 대해서 정리하지 못한 부분일 거다. 혹은 아예 오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왜냐면 이 사람 글쓰기 스타일이 자신의 사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조히스트라 그런 강력함을 만나면 좋긴 한데, 차라리 츤데레면 받아줄만 한데 이 사람은 백치미 같다.같은 레벨의 고민을 오랫동안 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예 이 사람의 사유에 절대적으로 동의해야만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 묶여야 저항이라도 하지 그런 느낌? 책이 자그마해서 필사해도 좋을 정도인데, PDF로 만들어 놓으려다 시간이 없어서 다는 못했다. 좀 신변이 정리되면 하루 날잡아서 해야겠다.

요즘 무의식적으로 특정 감각의 막장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있나보다.

2009년 9월 5일 토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9월 6일

  • 하긴, 글꼴도 고딕이 좋지.(고딕 goth font diary)2009-08-22 23:16:15
  • 이제 나가볼까 ㅠ(tacit perform diary)2009-08-23 13:38:11
  • Annika Bäckström(스크랩 bloglovin)2009-08-23 14:12:05
  • 슬슬 나올 법 한데, 아직 한국 음악에 대해 정리한 책은 없구나. 포크 같은 특정 감수성에 얽매이거나 잘 만들거나 잘 팔린 거 치중하지 않아도. 그냥 음악사적으로 맞아 떨어진다거나 형식만으로 나눠보는 시도도 먹힐만큼, '한국적'이지 않더라도 작업들은 다양할 텐데.(me2book 한국 음악창작자의 역사 1 박준흠;;)2009-08-25 22:12:59
    한국 음악창작자의 역사 1
    한국 음악창작자의 역사 1
  • 바그너와 블루스 / 일렉과 펑크 ; 사이인데 어디인지 모르겠다;;(취향 diary)2009-08-27 00:18:12
  • 그늘이 추워졌다!(me2mobile 날씨 >_<)2009-08-31 09:11:11
  • 아킬레스가 만일 시공간을 생각한다면, 그는 거북이를 이길 수 없다.(me2mobile 발레리 quote)2009-08-31 13:21:29
  • 누군가의 이윤은 누군가의 거스름돈 ; 거스름이라는 말도 참 재밌다.(me2mobile diary)2009-09-01 19:55:18
  • 하루하루 마음먹은 양식이 구현되는 축복, 매일매일 예기치 않은 자극에 감사, 나머지 출몰하지 않아도 좋을 것들에 대해 기다릴 수 있도록 기도를 ; 나에게.(diary)2009-09-06 00:42:48
  • 헤어스타일은 어떤 사람 철학을 드러내기 가장 괜찮은 방법 : 몸에서 가깝고, 인상을 좌우하고, 조금씩 자라고, 끝이 훼손되고, 관리 안 하면 망가지고, 염이나 변형도 가능하지만 뿌리는 같다. 그래서 난, 헤어스타일과 스타킹 매치를 잘 하는 사람에 끌린다.(... 취향;)2009-09-06 00:51:47
  • 담배 한 개피에 물 250㎖, 소금 작은술엔 그 두 배는 필요한 것 같다 ; 해독하려면.(소금 물 담배)2009-09-06 02:00:22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8월 22일에서 2009년 9월 6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9월 3일 목요일

서양미술사, 곰브리치, 예경, 1995

대학 말미 타과 수업으로 들었다가 졸업을 못 할뻔 하게 했던 문제의 과목에 교재로 쓰였던 책, 이번에 시골 내려가시 다시 보니 참 재밌다. 교재로 쓰지 않았다면 더 재밌게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사실 교재로 쓰기 전에 한 번쯤은 훑어 본 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 제대로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때는 취향이란 문제에 참 민감해서, 나랑 같은 타입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던 때였다. 저자처럼 너그러운 맘을 가지고 작업자나 시기에 따라 당위성을 배려하는 일 따위 없었다. 어쨌든 도판으로 보니 원작의 스케일이나 텍스처는 별로 실감나진 않지만, 그래도 그들 행위의 의도만은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평이란 행위에 대한 입장도 그렇고. (원본을 보고 싶어하게 하는 리뷰로서 최상이기도;)

 

나에게 인상적으로 보이는 흐름은 아는 대로, 보이는 대로, 느낀 대로 그린 사람들의 엉킴이다. 내 취향대로라면 그것들을 투명성과 반성성이라거나, 계산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눌 수도 있을 거다. 아마 그 사이에 있는 자연은 그 이분법이 모두 막혀버릴 때 새로운 길이 되겠지. 이념이 갑갑할 때, 자연은 해방구가 된다. 반면 감수성으로 혼란스러울 때 자연은 올바른 규범이 된다. 자연을 모델로 삼아야할지, 극복해야할 무엇인가로 여길지... 그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나처럼 무심할 수도 있겠고. 최소한 그걸 통해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얻을 수 있다. 그런 끝없는 탐구심을 저자는 참 좋아한다. 동시에 그 작업들이 삶의 결을 드러낼 때 감동받는 걸 보며 참 순수한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확고한 애정이란 지각의 균형이 잡혔을 때 발현된다.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준들은 기실 개인에게는 복합적으로 잠재해 있고, 지나간 작업들을 묶어 정리할 수 있고 그 가치를 부각시킬 수 있다고 해도 특정 유파의 수확에는 얻는 부분이 있으면 잃는 부분이 있다는 말처럼, 나 역시 문화에 있어서 진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는 현재라는 폭풍이 지나갔을 때 고요한 중심과 부서진 거리의 잔해들로 그 힘을 가늠할 뿐이다. 

 

창작자의 흐름, 창작이라는 행위의 원동력, 그들이 세계를 응시한 방법, 고대로부터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 그것들이 이론이 되고 학문이 되는 과정,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오히려 미술가들의 역사라기 보다는 비평의 역사로 더 실감이 난다. 예술이 권력에 기생하며 권력자의 아량으로 존속할 수 있었던 체계라고 생각하면, 이 책의 매력인 너그러움에 대한 삿된 생각일까. 그저 세대차이일지도 모른다. 가령 이 책은 뒤샹 이후의 작업들과 미디어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아마 이 책에 담긴 시각은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을 통한 예술이기에 그럴 거다. 나도 그 효과를 도매금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기계적인 입장을 이식한다고 그게 꼭 확장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역시 취향 문제겠다. 혹은 자기연민에 가까울 지도.

 

모든 인간이 각자의 목소리를 높이고, 모든 집단이 각자의 잣대를 주장해도, 여전히 불충분함과 과잉은 남는다. 또한 도구가 사용자의 사고를 결정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예술은 유효하다. 아직 탐구하고 거부하고 정리할 것이 남아 있으니까. 예술가들이 어떻게 기존 세계에 자리를 잡고, 그들 작업이 기존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 일은 부차적이다. 최소한 그들 사후를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그렇다. 나는 권력과 종교의 우상이었던 예술을 안다. 또한 지금 창궐하는 우상도 안다. 그러나 나 역시 메타 예술 속에 있으니... 돌아갈 자연이 없으니 배수진 같은 위기감이랄까. 물론 이런 자신을 설명하는 일 역시 부차적일 테지만.

 

현재에 대해서, 교환이 끝나면 잊어버릴 가치에 있어서 퇴로는 강박적인 신념이나 의지 외에는 없는 걸까? 과거에 대해서, 하나의 역사를 부정하고 재배치하려는 힘은 결국 다른 역사로 반복될 수순인 걸까? 미래에 대해서, 반보 앞서 나가야 한다는 말처럼 그렇게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식이 적합한 걸까? 더는 새로움이 의미가 없다면 과거로부터 선별한 가치들을 흘려보낼 수도 있겠다. 내 글쓰기는 불가능. 나는 학교에서 과거의 기예를 배우지 않았다. 애초에 글을 그림처럼 여겼다고 하면 게임 셋 같은 느낌인데, 그렇다고 그림을 글처럼 여기지는 못할 것 같다. 오히려 반대다. 시는 나에게 거침없이 접근하지만 조심스럽게 표현되겠지만, 그림은 조심스럽게 접근하지만 거침없이 표현될 거다. 기본자세는 그렇게 잡는 게 좋겠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090821, Tacit perf@Doosan A.C.

틀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데... 선언 이후, 모자란 부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게 더 어렵다. 그 지속만으로도 설득력을 지니기도 하고. 이들이 사용한 되돌리기가 가능한 형태와 소리. 그건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순환하는 게 아니라, 작은 프레임 안에서는 유효한 플로우. 형태가 의미를 얻지 못할 때는 리듬만이 남게 된다. (내가 그때 생각했던 의미는, 재사용 가능한 일관성이 아닐 거다)

음의 질감, 음의 어조 : 같은 리듬을 다른 음조로 말해서 중층 효과를 얻는다. 그 겹침은 전체 구조의 앙상함을 감추고 흐름을 형성한다.
프레임이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불완전한 형태는 양의 차이로 이해된다. 반이나 남은 물, 잊혀지지 않는 후렴구 같은 거.

형태가 존재할 경우 그 안에서 유희가 가능하지. 일단, 나는 선형만을 형태를 이루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선형적인 흐름이 형태를 이루는데(형태라고 인식되는) 주된 방식이라고 여긴다. 애초에 프로그래밍이었으니, 비선형일리는 없지. 내부 언어의 문제, Ctrl+Z이 가능하다는 거다. 다만, 내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감각과 논리를 일치시키려는 욕망은, 기존에 완성된 양식(작품)을 파편화하고 그걸 재현하면서 충족될까? 완성이라는 말이 양과 질을 합친 수준으로 이해된다면, 가능하겠지. 오늘 공연의 포장은 사운드 아트라지만, 실제로는 Aka 총체예술, 이었다. 창작자에게는 그러하다고 한다, 감상자 입장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Tacet(Ita) : Tacit (Eng) = 침묵. 그렇다고 한다. 존케이지가 떠오른다. 실제로 구현된 건 사념의 리듬이랄까, 게임음악처럼 사용자의 조작이 그대로 소리로 나타나는 식이었지만. 코리 아크엔젤이었나? 마리오 갖고 장난치던 사람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 보단 8비트 게임음악이... 가장 개념적(?) 아이디어로 승부했던 게임들. 그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단순한 음악들. 그런 음의 좌표화는 음의 건축화로 이어지겠지만, 사람들에게 그게 필요할 이유가 있을까. 소리가 사람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는 건, 글이나 이미지에 비하면 더 원초적이라 오히려 무감각해졌다. 귀를 막고 사는 사람은 의외로 많을 것 같은데. 비명이나 외침이 충격을 주는 일은 글이나 이미지가 무력해질때나 가능하다. 다만 이걸 이미지에 대항하는 언어와 소리의 동맹으로 생각하면 재밌겠지만.

어쨌든 난 프로그램 위주라고 생각했다. 음악의 확장? 악기의 확장 정도? 그런데 그 보다는 표현 수단으로서 음악을 주로 사용한다는 정도지, 그러니까 컴퓨터라는 프로세서를 이용하면서 소리나 이미지를 모사 가능한 양식을 구현한다는 시도로 느껴졌다. Data로 출발하면, 다른 표현 수단을 전부 합성할 수 있다. 다만, 그게 인간 감수성이나 사고 체계의 전환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그러니까 계산을 넘어서는 무엇인가를 보여줄 수 있는지...

좀 더 출발점에 집중해서, 착상의 차원이라면, 자연에서 얻는 영감이나 코딩 라인을 보며 얻는 영감이나 같다고 생각한다. 기술미학연구회 분의 질문이 그랬는데... 그게 과연 창조일까, 라는 의문. 그러나 나는 자연이든 인위든 이해한다는 믿음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직 자바스크립트 언어를 모르면 그건 자연이다(...). 답변은 그저 대등하다고만 말했는데, 그런 다분히 낭만적인 출발에서 왜 분업화된 시스템이 강조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Tacit 경우는 전체를 아우르고 싶어해서 기계어에서 감성을 찾고 있다고 느껴졌는데. (그게 원맨밴드를 말하는 건지, 누가 끼어들어도 좋을 양식인지는... 아직 거기까지 선택할 때는 아니고)

즉흥을 난 굉장히 낭만적인 행위라고 생각했는데, 무지 형식적일 수도 있구나. 기존 곡의 재해석처럼, 파괴에서 복원의 과정을 보여주는, 애초에 형식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원동력이 배후의 리터러시에 있을까? 혹은 소리 구간을 잡아낸 다음 형태로 변환하는 툴처럼, 더 즉물적이지 않을까. 그런 Random이 사람의 손맛으로 느낄 수도 있겠다. 전체적으로는 통제 가능한 통계로 설명 가능하면서 세부에서는 무작위 ; 보는 과정에선 비선형이라고 느꼈지만, 전체에 있어서는 선형이라고 느낀 부분이다.

이 공연에서 이미지만 혹은 사운드만 있었다면? 오히려 따로 놓여져 있다고 했을 때 난 더 좋아보였다. 둘 다 세심한 매력은 있는데, 둘을 섞었을 때는 완성되었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테트리스 게임에서는 블럭의 높이가 음의 높이가 되고, 블럭이 사라질 때가 일종의 코러스 역할을 하는데, 좀 더 게임의 속성이 연계되었다면, 하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연결점을 잡고 그 아이디어를 구현했다는 걸로 의의를 두자.

유튜브 영상 중에 4분 33초라는 제목으로 음소거 상태에서 마리오 게임의 플레이를 보여준 것이 있다. 음악으로 보면 그걸 난 침묵을 음악 영역으로 끌어들인다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거 말고도 소리라는 개념을 들려주려는 시도였을까? 위의 영상에서 재밌었던 점은 소리가 침묵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알고리즘이 가시화되는 것, 그런 뫼비우스 같은 매력이 있었지.
어쨌든 Tacit은 그 침묵을 어떤 규칙의 형태로 생각한 모양이다. 소리를 생산하는 방식에 더 집중하며, 그래서 오픈소스로 자신들의 작업툴을 공개하기도 한다. 다만 그런 창작과정과 경험과정의 불일치는 무대에서 사람들이 직접 툴을 사용하지 않는 한 해소되지 않는다. (취향을 말하자면) 그게 기존 규칙을 깰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사실 지향이 다르기는 하다. 일단 그들은 음악언어와 일상언어를 일치시키려는 시도였으니까. 그러나 실제로는 그 사이에 기계언어가 있다.(그건 26일의 Text@Media fest에서 김중혁 최수환 이세욱이 보여줬다.) 쉬울 지도 모른다고 내가 생각한다면, 내가 선을 그리면, 그에 대해서 의미가 따라올 거라고 순진하게 믿고 있기 때문이겠지.

2009년 8월 20일 목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8월 20일

  • FF13 : 후아.(final fantasy promotion site 스크랩)2009-08-11 10:16:42
  • Through me, with me, in me, in the unity of the Spirit, all glory and honor is yours, for ever and ever.(Eucharistic siki)2009-08-11 16:54:33
  • sub 님으로부터 감염된 것만 같아….(me2Virus)2009-08-14 11:47:25
  • Pastel Music 7th Anniversary Festival : 9월 27일!(파스텔뮤직 Google Reader 도나웨일 donawhale 공연 concert)2009-08-15 06:24:30
  • 확실히 이때의 권력은 발현되는 순간에 있구나 모럴 없이 그저 촉각적인(me2mobile diary)2009-08-15 22:25:42
  • 미투는 글감되는 것들이나, 동영상 스크랩. 블로그는 글감들 감상문 위주. 재밌는 페이지는 일단 구글리더로 스크랩. 텀블러는 개인적인 글쓰기 혹은 개인적 취향의(;;) 이미지나 영상 모음. 트위터는 관심태그 중에서 RT하기. 저도 메신저는 거의 안 쓰게 되더군요.(web diary)2009-08-18 18:02:44
  • múm - Dancing Behind My Eyelids(Go Go Smear the Poison Ivy múm music video Dancing Behind My Eyelids vimeo 스크랩)2009-08-18 21:45:58
  • 설탕보단 초콜릿 초코보단 카라멜 / 밥보단 빵 그보단 떡(diary me2mobile 취향 조삼모사)2009-08-19 18:57:16
  • 내가 아직 본성을 믿는 이유는, 절대로 좋아할 수 없는 감수성이 있기 때문. (수준이나 병맛의 레벨 무관하게)(취향 diary)2009-08-20 02:46:53
  • 요즘 딴지일보가 재밌어졌다;(잉여 중흥 딴지)2009-08-20 12:11:12
  • 재미있겠네.(me2movie 썸머 워즈 스크랩)2009-08-20 14:59:17
    썸머 워즈
    썸머 워즈
  • 재미…라기 보단, 필요하겠네.(me2movie 나무없는 산 스크랩)2009-08-20 14:59:45
    나무없는 산
    나무없는 산
  • EXiS2009(EXiS 2009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스크랩 Naver Cafe)2009-08-20 16:29:00
  • 자기 이해해달라고 떼쓰는 것보단 적당히 꾸미는 것이 좋아졌다. 그게 스타일보다 형식이 되면 좋겠지. 그때 솔직함이란 자기 본성에 대해 까먹지 않는 정도겠지. 가치나 패턴을 잴 뿐이다. 당위성으로 존속되는 성격 없이, 타자에 대해 오만하거나 집착할 필요 없이.(성격 diary character)2009-08-20 21:11:52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8월 11일에서 2009년 8월 20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8월 10일 월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8월 10일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8월 6일에서 2009년 8월 10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8월 5일 수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8월 6일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7월 27일에서 2009년 8월 6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8월 3일 월요일

형태의 탄생, 스기우라 고헤이, 안그라픽스, 2006

 

창조한다는 것. 시스템을 구축하고 원칙을 세우고, 모양에 힘을 불어넣는 일. 지금처럼 단어들을 엮어 흐름을 만드는 일에는 믿음이 필요하다. 신, 국가, 사랑... 자기보다 우월한 존재 앞에 모두는 평등하니까. 우리는 스스로의 가장 좋은 부분을(혹은 약한 부분을) 신에게 바친다.
안그라픽스의 책은 명성만큼이나 참 예쁘다. 그렇게 섬세하게 구석구석 신경 쓴 책을 보면, 난 응당 그에 걸맞는 섬세한 내용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책을 읽는 일에 있어서도 더 집중력을 쏫아 붓게 된다. 더 이상 메시지는 중요하지 않다. 해독되지 않는 의미들은 도처에 넘친다. 스스로를 알아달라고 유혹하는 사인들.
무엇을 택해야 할까? 난... 스스로를 공백으로 만들면 그들이 쏭아져 들어올 거라 기대했었다. 맞다. 내 호기심은 여전히 왕성하다. 스스로를 잃어버릴 만큼. 그렇게 계속해서 다른 가치들을 올려놓을 테이블이 되고 싶었다. 어떠한 선입견 없이.

 

그러나 한 사람의 '인간'이 된다는 것은 '가치관'을 확립하는 게 아닐까. 국가가 시민에게 기대하는 것, 종교가 신도에게 기대하는 것, 연인이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
그들이 나에게 바라는 모습들,
나는 그걸 원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 역시 일원적인 순수성이라는 함정에 빠진 것인지도.
세계라는 거울이 나를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순진함.
나르키소스 최후의 유혹.

 

그에 대처하려고 난 변덕을 추가시켰다. 단순히 지루해서 그랬던 건 아니야. 책임지기 싫어서 그랬던 건 아니고. 더 갖고 싶어서 그런 건 더더욱 아니지. 내 변덕은 언제나 버릴 때만 발휘된다. 빈 자리가 채워질 거라는 기대를 무의식적으로라도 하고 있을까?
그들 믿음의 미약함을 몸소 실천해 보였을 뿐이다. 완전한 파괴 대신에 변덕으로 위안을 얻었을 뿐. 허무에 대한 의지는 나에게 분명 있지만, 그것이 지켜지려면, 그 공백이 공백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정말 번잡한 배리어가 필요하다.
이 책을 보며 난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다. 단순히 문화적인 친근함 같은 '의미'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투명성'과 '반성성'이 공존하고 있는 현재 예술이나 웹의 흐름은, 종교나 정치와 같은 현실적인 시스템에서도 나타난다.

 

하나로서 완전하지만 현실과 분리된 어떤 것. 그렇게 이분법적인 사고 패턴은 동서양 모두 있다. 다만 서양이 현실이라는 그림자 저편의 이상향으로 그곳을 완전히 분리시켰다면, 동양의 이 책의 카타치나 한국의 이기론, 중국의 음양처럼 현실에 상징 체계가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는 다신교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처럼, 국민은 위계질서는 있지만 누구나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신이 되어야 하나. 신화 속 신들은 자신들의 신도를 갖고 있다. 그리고 각자 책임지는 가치들이 있지. 그 정도로 책임져야 하는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거니와 신도를 만들어야 하는 귀찮은 짓거리를 해야하다니. 그런데... 이런 내 의지는 무슨 가치를 책임지는 걸까? 뭐라 이름붙일 수 있을까. 단순히 부정할 따름? 내 의지는 기존 가치들의 파괴 이상의 것은 해낼 수 없는 걸까. 이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렇게 난 생각했었다. 나 역시 내 행위와 의미를, 현실과 현실 너머의 것으로 분리시키고 있었어. 좋지 않아. 스스로를 실험체로 쓰는 거야 그렇다 쳐도, 그 일을 희생 제물 바치는 거랑 동격으로 여기는 거. 나 역시 종교에 매혹되었던 트라우마가 있고, 몇 년 간 정말 마음이 아팠을 땐 수도사나 될까, 하는 시기가 있었다고 해도. 단순히 종교의 오라를 문화적 색채로 즐겨 보려는 건 나에게 위험한 방법이었다. 나 역시 잘 통제된 제국. 멋진 영웅의 의지가 발현되는 체계를 내심 그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내 기억에서 '왕'이라는 개념은 동양적인 거다. 여기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그냥 내 손에 닿지 않는 이상에 대한 충성이 신앙이 현실을 어떻게 통제하는가, 그게 더 재밌어. 역사는 그러면서 만들어진다. 인간의 현실과 분리된 이상적 가치는 그걸 탓할 존재로 악을 만든다. 그 분리 행위 자체가 현실로부터 개입을 차단하는 수단일텐데. 네트워크의 주인은 권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권력이 조정해야 한다. 분리가 악의 소행이니까, 연결은 선한 것인가? 그런 믿음의 코드들은 종교나 예술이나 정치 모두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기존 세계를 완전히 부정해야 했던 시도들은, 결국 이 세계와 반대되는 일원적인 이상향을 상상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꼭 유일한 대안이고, 그들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대상이어야 했을까.
좀 더 작은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해. 단순히 서로를 지켜보는 걸로는 불충분해. 타인이나 규범들에 의지하게 되면, 그저 가만히 귀엽받는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만일 그들의 기준이 변하게 되면?

 

난 그들에게 내 기준을 가요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건 내 원동력이 될 수 없다. 내가 구현하려는 레이어는... 외양에 있어서는 전체와 부분이 서로 이어지고 순환되는 패턴이 될 거야.
아마 내가 부분에서 막힐 때 전체 틀에서 답을 얻고, 틀에서 막힐 때 세부 규칙에서 돌파구를 얻기 때문이겠지. 거기에 의미는 중요하지 않아. 그를 트리로 나타낼 수 있다면, 의미의 일관성은 없을 거야. 그게 내가 스스로에게 갖는 낯섦의 이유겠지.
이 책은 그런 패턴마저 얼마나 일관적일 수 있는지 보여줬어. 그건 역시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그렇겠지? 좋은 관찰자(저자)를 만난 탓이기도 하겠지만, 프로세서의 의지도 강했을 거야. 난 의미 없이 해내고 싶고, 그러니까 지각에 상징을 담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즉 메시지와 형식은 분리 가능하다는 거야. 나도 상징은 즐겨 쓰지만, 좋아하지는 않아. 이제 내 상징은 기존 상징을 뒤트는 정도로밖에, 그런 저항은 기존 설정이 필요해. 그것만이 재밋거리라고 할 수 있는데, 난 왜 지겹지? 자기 부정은 한 번으로 족하다고 생각해서? 솔직히 말하면 더 이상 젊어질 수 없어서 그래. 청춘을 에뮬레이트할 수 있어. 그런데, 신체를 에뮬레이트할 수 있을까? 그 간극을 즐길 수 있는 사람, 나도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싫어졌어. 인간 신체를 통제하는 권력의 짓거리와 별반 다를게 없다고 생각되는 거야.

 

아직 난 베이컨이나 실레의 이미지가 좋아. 그러나 그들의 그림은, 징후나 결과일 뿐이지, 나에게는 과정이 될 수 없어.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한다.
그걸 극복해야 해. 워홀 같은 방법 말고. 뒤틀기 지겨워.
좀 더 비인간적인 방법을... 그러나 분명 인간이 갖고 있는 기질을. 또 그걸 유희라고 단정짓긴 어려워. 시작은 될 수 있겠지만.
끝을 내지는 못해. 그렇다고 비극 같은 파국은 제외한다.

 

그 끝이라는 건 내 생명을 말하는 거야. 그 이상의 증명은 불필요하다. 나 역시 가치를 재단하면서, 좋은 것을 선택하면서 시작했지. 하나에 충실할 수 있었던 건 옛날 얘기야. 이제 인간은 그렇게 곱게 자기 인생의 끝을 낼 수 없다고 생각해. 그렇게 보면 위버멘쉬는 참 고대의 이상이지. 그는 절대적인 속박을 깨면 각자에 맞는 가치를 스스로 택할 수 있고, 그런 가치의 화신으로 개인 대 개인의 마찰과 교환을 거쳐 점진적으로 인류가 풍성해 질거라 믿었겠지만, 이제는 현실의 속박이라는 것도 의미를 상실했고 개인이라는 단위도 무의미해졌어. 우리는 매일매일 새로워 보이는 가치를 돌려가며 사용할 뿐. 그 무수한 링크가 다양성의 바탕이 될까? 누구의 다양함일까? 국가? 세대? 문화? 인간은 그저 밈을 위한 단말기야?

 

개인이라는 지루하면서도 낯선 단위. 더 이상 새로움이 불가능할 때 오히려 결핍과 미개함이 부각된다. 집단과 개인은 그렇게 엮임을 지속하면서, 그런 무리들은 다른 무리들과 격차로 구별되면서 나열되겠지. 보다 많은 가치를 처리할 수 있는 하나의 단위로서, 그리고 그와 같은 단위들과의 많은 링크를 소유한 개인들의 무리. 나도 거기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어. 그런 레이어가 없으면 신체가 존재할 수 없어. 최소화를 바라기는 하지만... 미리 준비했어야 하는데 너무 순진했어. 자기만의 환상에 너무 의지했어. 종교 같은 게 될 수 없는 환상은 지금 나에게 있어서는 시야를 방해할 뿐인데.

 

내가 좋아했던 걸 스스로 부수는 이유는, 그게 나에겐 신체나 다름 없기 때문이지. 사람은 참 사소한 걸로 죽어버리기도 하지만, 재생도 쉽거든. 너무 반복되면 왜곡되니 문제지만.
아마 이 글은 이 책에 의해 스스로가 부서진 다음에 재배열되는 과정을 쓰려고 한 것 같아. 그러나 내가 하려는 방식에 이름을 붙이지는 못했어.
형태를 탄생시킬 정도의 믿음은 없는 거지. 그렇다고 안 믿는 걸 믿는 것도 아니고.
마지막으로, 감각은 낭비를 좋아할까? 그저 감각에만 솔직하고 싶은데... 왜 늘 정리되지 않는 기분이 들까? 감각에는 주체가 없기에? 욕망만이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솔직함을 빌미로 욕망에만 충실한 것 따위 제일 저질이라 생각하는데.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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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일 일요일

헬베티카, 오브젝티파이드, 게리 휴스티잇

투명성 | 개성
인터랙션 | 정치적인 것

 

어쩌면 양분할 가치로는 적당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그 바탕이 대량생산에 있는 점은 분명.

 

어쨌든 편집의 묘미가 멋진.

 

스스로의 좋은 관객이 되는 것(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는),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쓰는 것.

 

  • 나 역시 불필요한 걸 떼어내 버리려 했었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더라.
  • 나에게 제약이 있다면, 오로지 개인적인 진실에만 의존한다는 것.
  • 기억에 의지하지 않은 산업디자인은 그래봐야 미술계야. 물론 예술이 산업보다 더 자유롭다는 건 인정해.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건 Scene의 이동이 아닌 것 같다.
  • 나 역시 모더니티가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적 제스처라는 건 인정해. 그렇기에 모더니즘은 언제나 영웅이 필요하지.
  • 이제는 지겹다 그 리바이벌. 영웅은 죽고 스타일만 남았을 때 - 최신의 기술은 이상적인데 여전히 인간은 살과 피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 일본적인 맥락. 객관적인 서정? 드러나지 않는 디자인에 역시 동의하고, 그게 내 천성에 맞는다는 것도 알지만... 너무 그게 수동적으로 보인다는 불안감.
  • 아울러 나 역시 브레히트 식의 낯설게 하는 기법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경우가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걸 바라는 사람은 없지.
  • 이제 내 形 -  kata - 理를 어디서 어떻게 꾸며야 할지...
  • 무엇을 택해도 개성은 발현된다. 개성이 없어 보인다면, 거기 숨겨진 걸 찾아내는 것도 재미있겠지. 디자인은 정직해야 해.

 

그래도 모든 시각적인 것과 음악적인 것 - 촉감이나 후각적인 - 좀 더 감각적인 것들이 강력해져도, 문학이 그래도 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그게 거짓말이기 때문이겠지.

난  거짓말 안 좋아해.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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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 시리즈, 노무라 미즈키, 학산문화사

 

문학소녀라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세헤라자드 페티시 때문이라 생각하지만, 나 역시 문학인간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더 민감하게 반응할 거다. 자신이 허무하다는 걸 인식한 다음에는 리터러시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아무나 자기 인생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순진하든, 계산적이든 어떤 의미로든 말이지.

 

하지만 리터러시에는 함정이 있다. 리터러시가 삶과 유리될 때, 그것은 키치가 된다. 손쉽게 변용 가능하면서도, 누구에게나 어울리고, 누구라도 부정하지 못하는 좋은 것. 거기에서 눈을 돌려 특별함을 찾는다고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옷을 잘 입는 거랑 패셔너블한 게 같을까? 누군가에게는 적합해도 누군가에겐 과잉된 거다. 문학은 언어의 패션이다. 어조, 타이프, 문체, 진실성 뭘로 보든.

 

아마 그 대비 - 어떤 기준에 따라 나열될 수 있는 각자의 진실, 그 단계들의 경게선의 음영과 경계선에서 멀리 떨어진 각 단계의 중심부는 밝게 보이는 - 착시처럼.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할 시점이지만, 그것은 생략. 그 일은 조서를 쓰는 일만큼이나 번거롭다. 어차피 나는 아무것도 용서받거나 하고싶지 않으니 상관없어.

 

다만... 이제는 글쓰기가 다른 의미로 두렵다는 걸 말해야겠다. 전에는 쓰고나면 잊혀진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쓰고나면 진실이 된다. 잊어야할 것들과 다짐해야할 것을 잘 구별 못 하겠어. 음각과 양각의 차이일까? 익숙한 것들이 갑자기 낯설어지고... 결국은 감정의 문제일까? 내가 음악으로 감정을 보충하듯, 과거에 나는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를 존재시켰지. 그건 아바타나 철학적인 근거로 삼는 식은 아니야. 세헤라자드의 말을 듣는 입장에 가까웠고, 점점 정말 존재 그 자체, 나라면 쓸 것 같은, 누군가 내 이야기를 대신 써준 것만 같은 느낌에 중독됐지. 점점 팬으로서는 불성실해졌지만.

 

내가 그런 독자였기에, 작가로서 나 역시 독자를 믿지 않아. 아직 음악은 내 양식이지만, 책은 점점 먹을 게 적어져. 아마 쓰게 될 거야, 안 그러면 내가 죽을 거 같아서.

 

이 시리즈의 방식으로 쓰지는 못하겠지. 이 작가의 마음을 모르겠으니까. 작중인물에는 크게 공감해. 토오코x이노우에 커플의 모습은 각기 내 반 정도를 나눠놓은 모습이라서 개인적으로는 더 눈물이 났지. 고전적 스토리의 패러디와 학원 미스터리와 동인 코드가 어우러져 있고, 텍스트의 플롯이나 볼륨은 물론 일러도 깔끔했지. 에필로그는 불필요했다고 생각하지만.

 

끝나버렸다는 게 내 심정이지. 작중인물의 마음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들켜버린 거야. 그럼 더는 그렇게 못하지. 그게 내 패턴인가봐. 확인되는 순간, 멈춰버리는. 개념주의를 긍정하면서도 그걸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확실히 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어. 그게 오히려 부정적인 면이 강조돼 버리니... 아슬아슬함을 즐긴다고 해야할까. 극복이 가능할 지는 모르겠다. 내 인생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삶은 누구에게나 흘러가. 다만 너 자신의 이야기를 만드는 건 다르니까 하는 말이야. 평범, 특별의 범주와 별개야. 네 스스로를 구속하는 가치들과는 무관해. 그래도 즐겁다면, 그게 진짜지. 그런 가지치기에 네가 관심이 없다면 상관없겠지만. 하지만 나 역시 별로 나무들을 사랑하지는 않는데...

 

만일 상징성이 강력하다면, 그것은 과거의 효용성을 차치하고서도 현재 시점에서도 바로 인식 가능해야 한다. 물론 그걸 본능이라던가 황금비처럼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 생각은 없어. 보이지 않게 그 코드들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가, 그런 문제. 그리고 그들을 담아내는 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게 과연 쓸모가 있을지 그런 문제.

 

@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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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자본주의 - 전화, 라디오, 축음기의 사회사 | 요시미 순야

천재는 개념에서 이미 질린다고 하지, 또 누군가는 '개념'만으로 예술이 가능하다 했지. 형태를 갖추기 전, 형식만으로 자신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난 천재도 아닌 것 같고, 영감이 샘 솟든 항상 차올라 있지도 않아. 오히려 무언가를 계속 생산해내야 하는 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표현하지 않았던 착상은 버리지 못한 사랑의 미련처럼 나를 사로잡는다. 결국 우유부단만 증명할 뿐. 그런 방식의 소통은 만인이 같은 높이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최소한 서로를 연결한 링크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다.
점점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하는 게 지치고 있다. 원래 기대하지 않았어, 아니 그래서 더 지루함이 가속해서 나를 앞지르는 걸까. 내 감정은 내 이성과 얼굴보다 빨리 나를 캐치해낸다. 그럴 때 내 얼굴은 난처함.
이 비겁자!

 

마법 같은 음성 언어. 시와 노래와 대화가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로부터, 문자에 주문이 각인되고 복제하는 수단 자체에서 눈에 보이는 조형성이 추가되면서, 문자 언어 역시 음성 언어에 전혀 꿀리지 않는 예술적 흐름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인쇄술의 발명 이후, 소리가 복제되는 기술이 등장할 무렵,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이야기다. 꽤 기술결정론적 시각에서, 녹음 기술이 자본주의를 촉진시킬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가치 교환은 가치 보존을 전제로 한다. 자본의 장점이자 단점은 쉬운 복제. 화폐는 은행으로부터의 빚이라고 하지? 하지만 최초의 복제는 코드로부터 시작했다. 그건 규칙성을 가진 신호.  다만 그 형태가 소리였고, 그것이 오래 유지하게 되면 신체적인 소리처럼 긴 소리로 주고 받게 되었을 뿐. 그때 소리는 이미지가 된다. 기계적인 변환을 거쳐 진동으로 되살아나지. 그걸 소리의 죽음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거기서 출발한다. 어째서 살아있는 소리가 채집돼야 하는가.

 

문자가 권위를 가질 때, 소리는 저항의 수단이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그들의 구호를 외친다. 모든 것이 이미지로 바뀌는 현재에는 오히려 침묵이 더 효과적이지만. 가령 촛불시위에서 보이는 건 빛과 신체이지 거기에는 소리가 없다.
있더라도 강조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서 모두가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면 전혀 주목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어떤 소리가 인상적으로 들리는 경우는 대비 효과 때문이다. 아마 나는 웅성거리면서 자유를 느꼈던 세대와는 다를 거다. 침묵을 저항으로 삼았던 사람들의 방법일지도. 사실 그게 저항인지 알지도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과거에는 그랬다. 소문을 타고 권력은 흔들렸다. 그건 지금의 언론, 웹의 담화들, 술자리의 안주로 늘 반복되고 있지만... 거기에 권위가 있을까. 사실 그 보단 진실이 있냐고 말하고 싶었다. 그저 게임으로 보이니. 그건 아마 내가 저잣거리의 소통 자체를 혐오했기 때문일 거다.
이 책에서 보여줬던 소리로 연결된 여러 비전들과 그들이 기술적으로 나타났을 때 함께 밝혀진 기존 사회의 틀은 지금의 웹이라는 매체에 빗대봐도 많은 부분에서 겹친다. 과거에는  '전기'가 만능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어떤 기술이 처음 등장할 때, 그 힘이 주목받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러면서 사제와 신도가 나뉘는 것처럼, 전기 마니아-기술자들이 전기 지식을 갖지 못한 자에 대해 미개인 취급하는 모습도 있었다. 그건 국가라는 틀에 담겨 있던 문화가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기술은 그런 틀의 강도를 높여주고 작동을 원활하게 해준다. 제국들이 세계를 개척하는 모습을 연상하면 될 거다.

 

내가 왜 다수의 목소리를 소음으로 생각했을까. 내가 생각하는 소음과 음악과 언어의 차이는 뭘까? 이해할 수 없다면 물론 같다.

 

소리를 내는 기계의 목소리가 여성이 됐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미디어는 인간의 피조물이고 도구라는 의식 ; 기껏해야 비서, 집사, 하인, 하녀였다는 점.

 

현재의 녹음은 물리적인 변환을 거치지 않고, 다른 언어로도 가능해졌다. 또한 모든 소리의 치밀한 통제, 귀에 들릴 때 그것이 어느 정도의 강도와 위치에 있을지 예측이 가능하다. 소리의 디자인이 가능하다. 문자의 디자인이 가능한 것처럼. 어쩌면 디자인은 자본주의 최후의 놀이일지도. 모든 게 너무나 넘친다면, 남는 건 분배하고 정리해야 한다. 반면 마음 한켠에는 정말 그것이 전부? 라는 의문도 있다. 나 역시 언어가 포화상태라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저 감정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진짜 감정만, 새로운 감정만. 그래서 언어의 깊이 따위 상관 없었던 거다. 그것도 이젠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지금 이 손이 이렇게 떨리고 있는데, 제대로 나를 나누고 분배할 수 있을까. 결국 난 내 전부를 알아야만 늘어놓을 수 있을까. 아직 꺼내지 못한 자신이 남아있다는 건, 불행일까 행운일까? ...그렇다면 자본주의 세계는 어떨까?
이 책은 음악에 대해서는 이야기되지 않는다. 소리가 어떻게 송수신됐고, 어떤 반경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사용됐는지, 기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행동 기록을 통해 드러내고 있을 뿐.

 

최초 전기가 사용됐을 때의 센세이션.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부정적인 SF의 상상력이 기술 자체에 대한 부정성보다는 그것을 응용하는 권력에 더 초첨이 맞춰져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해서 인상적이었다. 전에는 다만 기술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물론 그런 면은 반대로도 나타난다. 마치 현재의 웹을 정화해야하는 집안마당 쯤으로 생각하는 우리나라 정책처럼, 기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소리의 네트워크가 국가적인 통제기술로만 자리했던 것은 아니다. 마니아들의 호기심 대상이기도 했고, 지역 자생적인 네트워크로 조직되기도 했다. 주파수가 겹친다는 혼선은 여기서 오류가 아닌 소통의 수단이 된다. 혼선을 통해서 사람들은 서로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는 아직 녹음된 형태를 돌려가며 보는 것이 아니었다. 소리의 순간성이 남아있던 셈.
매질. 그리고 소리와 빛의 속도 차이가 그 감각의 속성에 영향을 줄까? 빛에 의해 재생되는 이미지와 빛으로 변환된 소리는 같은가? 물론 수신자는 그것을 자신의 현실에 맞게 재구성하겠지만. (아마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공감각이라는 게 지나치게 시각 위주로만 인식되는 면에 대한 투정이었나보다;)

 

권력들 - 히틀러의 고양 - 루즈벨트의 냉정 - 일왕의 공백 - 한국의 코미디. 그 일그러진 권위. 스스로를 왜곡시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권력 따위. 그러면 나는 어떨까? 난 스스로에게 어떤 존재인가. 역시 조롱받고 있지 않나? 그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 세상을 반영한 나인가. 진짜 나는 기계의 목소리로 위장하고 있을지도.

 

책의 내용과 기존에 가졌던 생각이 뒤섞이고 있다. 책 읽을 때 지나치게 곡해에 의존하고 있다. 작가의 입장에 서려는 버릇이 남발되고 있다. 좀더 작가의 전체적 틀은 지켜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내 이야기를 쓰는 게 낫지. 다른 것에 나를 전염시켜서 어쩔 셈.

 

마지막으로, 소리와 웹의 차이점과 공통점들.
라디오나 전화 역시 기존 도구를 재매개하며 시작했어. 공연, 뉴스(신문의 구성), 음악, 전신. 그러나 라디오와 전화는 더욱 풍부한 가능성이 있었지. 바로 잡담. 라디오가 고유의 예술성을 구축하려 애쓸 때, 전화는 본격적인 미디어로 기능하려 한다. 무엇인가 중요한 도구에서 미디어가 되려면, 쓸모없는 짓거리가 가능해야 해. 가령 구글이랑 끝말잇기 놀이를 하는 거?
누군가는 그걸 여성이 참여하고 싶은, 사용하고 싶은 거라 말하더라. 그건 젠더로 남성이 도구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건데, 별로 맘에 들지는 않는 예시. 설령 진짜로 그렇다고 해도, 그게 차후에도 반복돼야 할 규범처럼 여겨지는 건 참 짜증이지. 완고한 가치는 비틀어 갖고 놀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가 최고라고 착각한다. 너그러움으로 세상 전부를 감당하고 자부하는 친절함. 그게 어린애의 순수함이라면 그나마 이뻐 보이는데, 늙은이가 그런 식으로 귀찮게 굴면 보기가 싫어지지.
전기나 소리를 다루는 기술이 신세계인것처럼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처럼, 웹 역시 그래. 그러나 웹은 국가보다 연구자와 기업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컴퓨터라는 단말기와 함께하면서 더욱 강력해졌고. 컴퓨터는 사실 애초에는 군사적 목적에서 적의 암호를 풀어내는 복호기로 시작됐다가, 모든 구조의 에뮬레이터로 재발견된 거지. 그건 인간의 대화 - 즉 언어기도 하고, 이미지가 될 수 있지. 그래서 맨처음 출판물의 형식을 빌어서 웹은 찌라시와 정보의 더미로 쓰이게 되지만. 이제 그 더미를 나누고 분류하고 기술이 중시된다. 작은 범위의 개인성과 연결성이 강조되고 있어.
여기에 아직 이 기술이 제대로 전파되지 않은 지역과 문화적인 갭이 생기겠지만, 인터페이스의 발전을 그것조차 극복할 거다. 사용자의 동작을 예측하고 그에 대비하는 인터페이스는 결국 상대의 수준까지 예측해야 할테니까. 신체의 작동방식과 닮은 형태로 변화하는 디바이스는 컴퓨터와 웹을 인간에게 마치 기존의 신체처럼 위화감 없이 받아들여지게 될 거다. 그게 이상이겠지만.

 

우리 신체의 본질(?)은 뭘까. 그래봐야 인터페이스는 계기판에 불과할 텐데. 그렇기에 누군가는 소리의 원본 - 소리가 발생한 장소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없는 거겠지.

 

@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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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6일 일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7월 27일

  • …또 하권만 샀다; 저번 니시오이신 때도 中을 빼놓았는데 -_-(me2book 문학소녀와 신과 마주보는 작가 下 노무라 미즈키)2009-07-20 23:54:10
    문학소녀와 신과 마주보는 작가 下
    문학소녀와 신과 마주보는 작가 下
  • 초딩 때 시크하게 감명받았던 증산도 이후로, 오랜만에 트라우마를 자극시키네. 오히려 정리 잘해줘서 고맙다는 느낌. 사실 내용보다는 책의 구성이 예뻐서 갖고 싶었다. 하지만 재미도 있을 듯.(me2book 형태의 탄생 스기우라 고헤이 diary)2009-07-20 23:59:57
    형태의 탄생
    형태의 탄생
  • 결국 책을 사지는 못했다. 도서관이었다면, 빌린 다음, 감금 당하고 난 후에는 읽을 수 있겠다 ;(김경주)2009-07-21 00:19:19
  • , 잊으려 애썼던 단어 ; 최선이며 최악이었고, 다양한 희열을 맛봤고, 마음과 의도와 결과와 반응이 일치되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던 기억들. 이젠 뭐랄까…, 시드는 꽃도 싫은데, 향기 없는 꽃도 싫은. ㅇㅇ 그래서 스스로가 싫은. 다음은 들꽃을보라 님에게-(사랑 부모 연인 종교 자기 같은)2009-07-21 20:08:56
  • 아하, 덕분에 재밌는 책 알았네요.(me2book 물고기 마음 루시드폴 스크랩)2009-07-22 11:22:28
    물고기 마음
    물고기 마음
  • 의석이 지분이면, 재벌은 오프로 남짓이라는데. 쪽수로도 안 될 것 같은 느낌.(난 그런 공기업 싫어 내수용 제국주의)2009-07-23 01:21:20
  • 어렸을 때 한글은 간판으로 깨쳤는데(me2mobile 이젠 차창 너머로만 보게되는 간판)2009-07-23 18:10:50
  • 즐거웠던 하루. 역시 나에게 필요한 건 컬처쇼크.(diary)2009-07-25 23:47:32
  • RSS에까지 따라오는 광고 이미지는 좀.(rss)2009-07-26 00:06:45
  • 시시한 영웅 다음에는 시시한 악당이 웃겨주겠지.(trend 슬픔보호구역)2009-07-26 23:26:38
  • 깔끔. 딱딱한 소재와 다양한 쟁점들을 살짝 주관적이긴 해도 재밌게 배열한 편집에 감탄. 게다가 조금 눈물날 정도로 나름 감동. =_= 다만 두 영화가 너무 비슷해서… 나름 감독의 세계관이 확장됐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디비디로 소장하고 싶지만, OST가 더 갖고 싶다 ㅠ(me2movie 오브젝티파이드 헬베티카)2009-07-27 00:01:45
    오브젝티파이드
    오브젝티파이드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7월 20일에서 2009년 7월 27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7월 19일 일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7월 19일

  • 미투 예쁘다. 아카이빙에 더 편해진듯. 다만, 전처럼 포럼 사이트같은 느낌은 사라졌다. 미투하기나 댓글 숨길 수 있으면 좋겠고, 이제 아이콘은 없는게 낫구나 생각이 들고, 날짜 숫자도 너무 크고, 글쓰기 창 숨길 수 있던 것처럼 레이 겹침이 있음 좋겠다.(미투데이)2009-07-15 09:49:12
  • 글 삭제 보단 휴지통 있어도 재밌을듯. 버리면 익명화되는 거랄까. 미투나 댓글 단 글은 그 사람에게만 보이도록. 타인의 글도 버릴 수 있다면 재밌겠다. 맘에 안 든다는 표시랄까 ㅋㅋ 아… 미투한 것도 rss 가능했으면 ㅠ(미투데이)2009-07-15 09:53:20
  • 바뀐 미투를 좀 눌러보다보니까… 트윗보다는 싸이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싸이월드 미투데이 diary)2009-07-15 23:39:19
  • 샤워 갓 마친 햇살, 신선하다 >_<(날씨 맑음 diary 유통기한 1일 내일은 피지 me2google)2009-07-16 10:56:36
  • 재밌을 듯?(me2music Moderat concert 스크랩)2009-07-16 16:21:07
    Moderat
    Moderat
  • 달걀…하면 그걸로 하루치 칼로리를 채우다가 어느날 실수로 깨트리고 절망에 빠졌던, 폴오스터 문팰리스 주인공이 늘 먼저 생각남;(egg 달걀 계란 me2book 문팰리스 폴오스터)2009-07-17 14:02:12
    문팰리스
    문팰리스
  • 소환에서 구속·기소까지 수사받는 법 Q&A 완전판(한겨레 매뉴얼)2009-07-17 16:13:36
  • 결코 mean16 님으로부터 감염되었다는 사실은 밝힐 수 없습니다만….(me2Virus 나름 성공?)2009-07-18 13:12:49
  • 김경주 씨 잘 생겼다. 고로 책을 읽어봐야겠다.(text@media fest)2009-07-19 04:45:10
  • Lift Conference on vimeo(Lift vimeo 스크랩)2009-07-19 16:19:31
  • Beautiful Day(YouTube Beautiful Day u2 music video)2009-07-19 20:23:37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7월 15일에서 2009년 7월 19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7월 14일 화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7월 14일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7월 9일에서 2009년 7월 14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7월 8일 수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7월 9일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7월 3일에서 2009년 7월 9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7월 2일 목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7월 2일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6월 29일에서 2009년 7월 2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6월 28일 일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6월 28일

  • 재밌다. 좋아하는 개그코드. 속편 어떻게 만들까 싶다(매트릭스처럼은 되지않길;;).(me2movie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2009-06-28 19:21:39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6월 28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