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3일 화요일

이야기를 제외한 모든 것

이야기가 많은 세상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세상을 좁게 만들었다지만, 오히려 우리가 접하게 되는 이야기는 늘어나버렸죠. 이야기라는 말 역시 Story, romance, fiction, novel 등으로 나누어 표현할 수 있습니다. 물론 뉴스처럼 공적인 이야기부터 개인의 사연까지 끌어들인다면 사건과 인구 수만큼이나 끝이 없을 테지만요. 약간 핀트가 어긋난 느낌입니다만, 여기까지가 이야기를 다루는 여러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출발점입니다. 예술이나 엔터테인먼트 작업의 결과물로서의 이야기. 문자화된 이야기가 아닌, 이미지가 표면이고 문자가 내용이라는 것도 아닌, 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막membrane 혹은 필터filter에 대한, 이야기를 문학이라는 범주에 포함되지 않게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 앨런 무어Alan Moore[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가 정식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Watchmen을 재미있게 보고, 다크나이트 이상으로 영화 역시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소 어려운 시국과 묘한 시기에 나와서 약간 걱정이긴 합니다만. 그를 가리켜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의 전설이라 표현하더군요. 저는 앨런 무어 책을 보며 그 말을 처음 들었는데... 여러분은 비주얼 노블Visuall novel, 사운드 노블Sound novel, 라이트 노블Light novel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심지어 노블 코믹Novel comic이라는 말까지 있어요. 이 외에도 제가 모르는 용어들이 있겠지만, 이야기를 수식하는 말들이 참 많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픽 노블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만화, 그러니까 코믹스Comics의 대안적 의미로 붙여졌다는군요. 앨런 무어의 작품들처럼 다소 무거운 주제를 표현하는 만화에 대한 비평적인 설정입니다.

 

신조어는 창작자와 수용자의 태도, 그리고 비평이나 상업적인 의도 중 하나라도 있다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기존에 있던 말로는 정의할 수 없다는 거에요. 비주얼 노블은 속칭 미연시라고 칭해지는 게임에 대한 말입니다. 더 너그럽게 보자면, 제가 어렸을 때 보았던, 독자의 선택에 따라 상황이 만들어지는 게임북이라던가 여타 모든 게임을 포함시킬 수 있겠죠. 사운드 노블은 일본의 [카마이타치의 밤]이라는 게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사운드 호라이즌Sound Horizon처럼 서사적인 가사와 콘서트 시에 퍼포먼스 요소를 강화시킨 음악 장르나 애니메이션 몇몇 내용을 OST와 함께 출연했던 성우들이 직접 읊어주는 오디오북까지 말하고 싶네요. 라이트 노블 역시 일본에서 파생되었죠. 순수문학에 포함되지 않는 SF, 환상, 무협, 팬픽, 혹은 애니메이션적 상상력으로 쓰여진 장르 문학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흔히 책 속에 등장인물 일러스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블 코믹스의 경우는 일본의 [D::]라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만화의 컷 속에 소설을 우겨 넣었다고 말해지기도 하더군요.

 

(일본의 케이스가 참 많네요. 취향이나 지리적 근접성도 있겠습니다만, 그들을 보면 굉장히 표면적인 것에 예민하다고 느껴지거든요. 약간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기본적인 프로세스와 겉모습이 일치한다면 그 중간과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느낌? 서브문화에서 그렇게 활발히 이식이 벌어지고, 오타쿠를 유행시킬 정도로 몰입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은, 단순히 일본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사정이라고 넘겨버리기는 아깝거든요.)

 

그것들은 단지 이야기를 말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일까요? 저는 숀탠이라는 동화작가를 좋아하는데, 최근에 국내에 출간된 [도착]이라는 작품은 글자 하나 없이 수백 개의 그림으로만 표현되어 있습니다. 전에 보았던 그의 작품들은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강렬한 그림과 짧은 지문이 주는 인상 속에서 그가 배치해놓은 상징들을 도해하는 재미가 있었죠. 그런 면은 D::의 작업에도 보입니다. 인물들의 말과 행동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보다는, 어떤 감정의 흐름과 다른 감정과의 충돌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고, 어쩌면 그에 따라 이미지가 그려지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만화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만화로 끝을 내야겠지요. 강조되는 것은 이야기도 이미지도 아닌 그 사이의 홈통gutter입니다. 저는 그 말을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에서 처음 보았고, 토가시의 헌터X헌터 25권을 읽으며 실감했네요. 주마등이라는 건 확실히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게 현실적인 힘을 갖는 건 불가능할까요? 이야기를 없어 버리는 게 가능할까요? 왜냐하면 자신의 스토리텔링이라는 건 자신에게 어울리는 상품을 구입해서 이룰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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