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30일 월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30일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3월 30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3월 29일 일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30일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3월 29일에서 2009년 3월 30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다원예술축제 - 자본론 제1권 / Festival Bo:m, Seoul - Rimini Protokoll Karl Marx: Das Kapital, Erster Band

마르크스의 자본론, 지난 세기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는 책, 난 읽어 본 적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마르크스를 성경처럼 받드는 태도를 혐오했다. 사회주의-진보-시위에 뛰어드는 대학생-선배들을 보며 난… 그들이 세상과 싸울 때, 반대로 나와 싸우고 싶었고, 나만의 세상을 갖고 싶었고, 아름다움 속에 살고 싶었다. 문학사를 빌려 말하자면 난 ‘참여’보다는 ‘모더니즘’에 가까웠고, 솔직한 심정으로는 제3의 무언가에 있고 싶었다. 그래, 그런 나의 포즈는 ‘하고 싶었다’로 끝났다. 물론 난 그들의, 이 세계를 주도하는 룰에 대항하는 그 모습에 반했던 적도 있었다. 다만, 나는 그러니까 더욱 스스로를 괴롭혀야겠다는, 내 방식을 더 강하게 밀고 나가야겠다는 또 다른 반항의 기제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 행사에 대한 내 움직임은 고원의 포스터에서 출발했다. 아주 오래전, 어느 무크지에서 그의 시를 본 기억이 있다. 다원예술이라는 이름도 그렇고 난 기본적으로 이런 태도에 대해서는 반갑게 생각하는 편이다. 단지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지만, 그건 애초에 기대감조차 갖지 않으면 별로 상관 없게 된다.

이 극을 보기 전까지 난 그런 태도였고, 어느 지인이 함께 보자고 끄집어주지 않았다면, 굳이 보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마르크스라는 소재도 그렇고, 아무래도 믹스 미디어에 그칠 것 같은 예감이.

난 연극을 좋아한다. 인생은 곧 무대. 그래서 더욱… 다른 장르의 예술에 비해서 연극에는 오히려 보수적인 기대를 갖는 편. 오로지 무대 위에 있는 배우의 발성과 몸짓으로 구현되는 어떤 세계의 느낌… 그것에 대한 집착이 있다. 그건 무용이나 음악으로 분화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그 자리는 거의 종교 이상의 신성함을 갖게 하는 장소. 음악이 나에게 종교라면, 무대는 나에게 천국이고, 문학은 나의 지옥이다.

현실을 나는 두려워했다.

난 몽상가 맞다. 그래서 더욱 이 극에 껄끄러움을 느꼈다. 회고적이라는 단죄를 씌울 순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나에게 기억될 것 같다. 너무 늙어버렸다. 이들은 다시 젊어지려 한다. 왜? 차라리 시마다 마사히코처럼 젊은 채로 늙어버리지 않았을까. 내 젊음은 죽었다. 지옥에 가버렸다. 부활할 수 있을까? 난 가끔 내 젊음을 불러낸다. 그를 모사해 보기도 한다. 내 아름다움은 아주 갸냘펐다.

아마 이 극을 텍스트만으로 보았다면 더 호감을 가졌을 거다. 이해할 수 없다. 무대에서 재현되어야만 했을까. 배우와 자본론 텍스트가 교감하는 현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비꼬아 말하자면 난 이 극을 보고 퇴역군인들의 야유회를 지켜본 느낌이었다. 그래, 노병은 죽지 않는다. 그런데,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무기다. 이 세상과 맑스는 어쩌면 양면의 동전으로 자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해결 가능한 문제가 있는 세계. 그래서 견딜만한 세상. 그들이 진심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거기에 어떤 순진함마저 엿보이기도 했고, 그들은 내가 이렇게 투덜대는 것 정도는 애교로 받아들일 정도로 자신들의 주제를 확실히 보여주지 않았다. 그게 편안함을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흐름으로 내가 조망할 수 없었던 이유일지도.

이 극은 또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무대가 아니다. 동원된 위트나 에피소드들은 전혀 환상적이지 않다. 마르크스와 함께 한, 마르크스로 보이는 세계의 흐름이라는 컨텍스트로 정리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정리하기에는 구멍이 너무 많다. 그 구멍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의 교집함이다. 가치 교환의 원리만이 유일원리일까. 그건 나에게 티켓값으로 차라리 자본론 책을 사서 보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는 반성까지 하게 만들었다. 사실 애초에 예술적인 오라를 기대해선 안될지도 모른다. 현대미술의 여러 속성들이 사용되긴 했지만, 전혀 효과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쓸쓸했다. 시위현장을 무대에서 지켜보는 기분은… 마르크스가 동물원에 있는 것만 같다.

거리를 매기기에도 애매했다.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누구의 이야기인지. 현실인지, 이상인지, 지나가버린 것인지, 다가올 것인지. 확 회고적이라는 낙인을 찍어 버리면 혐오할 수 있을텐데.

그리 맘에 들지 않는 무대였지만, 여러모로 고민거리는 많이 던져준 문제적인 무대. 일단 그정도로 ; 그런데 지금도 마르크스를 읽을 생각은 들지 않는다.

2009년 3월 27일 금요일

2009년 3월 26일 목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26일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3월 26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3월 25일 수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25일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3월 25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3월 23일 월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24일

  • 예술은 실패를 보여주고 기술은 실패를 예상한다(me2mobile 바늘꽂이 골무)2009-03-23 23:51:47
  • 삶이 먼저일까 내가 먼저일까(me2mobile 가능성 조건 제외 염두 양팔저울 시간 위치 기준점 무관)2009-03-24 00:05:30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3월 23일에서 2009년 3월 24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3월 21일 토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22일

  • 다닥다닥 붙어있는 글들을 수월히 읽을 때의 블럭화. 영역을 정해주는 게 아니라, 깜박이는 커서 - 적절한 명령을 기다리는 - 상태. 그 진동의 폭이 공간(흐름)이라면, 이미지는 오히려 자기가 사라지는 테두리에서 진동. 만진다는 느낌과 갈라놓는 느낌이 같을까.(flow block)2009-03-21 11:29:14
  • 예쁘다~(ASUS Airo 넷북)2009-03-22 00:19:16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3월 21일에서 2009년 3월 22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3월 20일 금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20일

  • 구글 리더 읽어주는 사람(필요해 내일이면 1000+)2009-03-20 09:47:51
  • 석수 주변 모래는(정말 파리약이네 -_-)2009-03-20 10:01:58
  • 8권 이후로는 매너리즘을 벗어나서 무한루프 ;(me2book 절망선생)2009-03-20 10:12:56
    안녕, 절망선생 11
    안녕, 절망선생 11
  • 우면서도 적절한 깊이, 범위. 전시와 연결된 텍스트라는 점. 투명성과 표현성 사이 균형 잡으려는 의도도 재밌었고, 베이스되는 사상들엔 익숙하지만 매끄럽게 침넘겨가며 보진 않았구나 반성. 대체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아마 난 좀 더 저질스런 방법을 원하는 것 같다.(me2book 진동 오실레이션 스크랩)2009-03-20 10:21:14
  • 매일매일 반복하다 보면,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도 할만 하겠네.(repeat 벽돌깨기)2009-03-20 20:40:01
  • 표현력의 한계는 없어, 깊이의 한계는 있을 수 있지만.(Remains quotes 뻘;)2009-03-20 23: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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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9일 목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20일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3월 19일에서 2009년 3월 20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3월 17일 화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17일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3월 17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3월 16일 월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16일

  • 발걸음 타악기, 속삭이듯 관악기, 한숨은 엠비언트, 현악기는 춤, 신경성 전자음…(somemotion gesture)2009-03-16 11:36:42
  • 에요예요? 아니에요.(맞춤법)2009-03-16 16: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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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4일 토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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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3일 금요일

2009년 3월 11일 수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12일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3월 11일에서 2009년 3월 12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3월 9일 월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9일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3월 9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3월 8일 일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9일

  • 누군가 선택받은 소리와 나머지 소리 이곳에 있어야 할 소리와 내가 지를 소리 누군가 선택한 나 내가 택한 당신(me2mobile 소리 sorry)2009-03-08 12:06:10
  • 강아지는멍멍 고양이는야옹야옹 참새는짹짹 송아지는음매음매 병아리는삐약삐약 개구리는개굴개굴 늑대는크르르릉 돌고래는끼익끼익 살인마는으흐흐흐 돼지는꿀꿀 거짓말장이는메롱 오리는꽤액꽤액 아줌마는돈돈 까마귀는까악까악 복사기는지잉 흡혈귀는축축 포로는엉엉 하느님은아하하하하핫(watchmen movie 030303030303 byul 아트레온 잭 스나이더 앨런 무어)2009-03-08 22:57:18
  • tickles' lives(tickles music)2009-03-09 00:5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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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7일 토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7일

  • 머리카락이 길어서 슬픈 짐승(me2mobile 머리가 빨개졌대 난 모르겠는데)2009-03-07 16:27:43
  • 오랜만에아빠청평은아직녹지않은눈이청풍명월은좋지만소음이그립구나침묵속악담이난더못견뎌(me2mobile)2009-03-07 22:51:25
  • 당신 느낌을 알겠어(me2mobile 메타오르가즘)2009-03-07 23:45:26
  • 정신의 비만도(me2mobile)2009-03-07 23:47:14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3월 7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7일

  • 그렇게 진지하시면 졸립잖아요…(work)2009-03-06 15:07:25
  • 이건 혼자 못보겠다 ;(me2movie 문프린세스: 문에이커의 비밀 패션쇼 스크랩)2009-03-06 23:27:45
  • 내가 보고 있던 것은 창문이 아니라 우산의 안쪽 면이었나. 글쓰긴 나에게 찢는 것이었나. 상처 없이 인터페이스는 그걸 되감을 수 있는 거였나.(gui ㅇㅇ)2009-03-06 23:35:57
  • 초회한정반의 악몽(hyde 한정판 스크랩)2009-03-07 12: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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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5일 목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5일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3월 5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3월 3일 화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3일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3월 3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3월 2일 월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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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일 일요일

베레니체의 미투데이 - 2009년 3월 1일

이 글은 베레니체님의 2009년 3월 1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의심하는 자만이 신의 얼굴을 보나니 (Doubt)


생각보다는 갈등의 골이 깊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영화.

시대적으로도 케네디 암살 1년 후라는 배경을 통해 약간의 흐름을 읽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박정희가 암살된 이후와는 또 다른 분위기일 거라 생각하지만. 솔직히 실감은 잘 나지 않는다. 그래도 미국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시스템 자체가 무너지진 않았으니까.

가톨릭 교단이 운영하는 학교 - 가톨릭 자체만 해도 조직 사회인데, 거기에 사회화 과정까지 맡고 있는 학교라는 역할까지 더해진다면 - 그 안의 타이트함.

수녀교사의 몸에 손을 대면 안된다거나, 집무실에 남녀가 있게 되면 문을 살짝 열어 놓아야 한다거나, 볼펜으로 글을 쓰면 안된다거나… 지금 보면 하잘것 없는 규칙들은 - 물론 지금도 몇몇은 무의식적으로 남아있기도 하겠지만 - 어떤 지혜를 통해 만들어지고 전수되었던 것인지,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알로이시어스 수녀는… 꽤나 복잡한 성격이어서, 제임스 수녀보다 사랑스러웠고, 베일에 쌓인 폴린 신부보다 더 공감이 갔다. 어쩌면 신부는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 권위가 인정되는 자리에 있기에 좀 더 자유로운 포즈를 취할 수 있는 형편에 불과하지 않을까. 가톨릭에서 수녀는 보조자일 뿐이다. 그렇기에 제임스 수녀의 따뜻함이 더 빛을 내는지도 모르지만…

의심.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모두가 동의하기 때문이다. 물론 죄인이라는 낙인으로 추방당할 위험도 있지만, 최소한 반반의 확률이다. 그러나 의심은 공유하기 힘들다. 그것은 반대가 아니다. 단순불만에 가까워 보인다. 무엇을 믿어야 하나, 라는 의문에는 어떠한 권위도 도움이 되지 않고, 자신의 판단마저 작은 선입견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의심에 대한' 의심까지.

이 영화는 정황증거로만 진행된다. 가령 DNA 검사라도 했으면 한방에 밝혀질지도 모르는 진실, 혹은 당사자에게 직접 물었으면 될 진실에서 개연성을 쫒다가 수녀와 신부 그들이 처해 있는 존재 자체까지 갈등의 골을 뿌리내리게 한다. 여기에는 배경이나 상황적인 여러 고려가 있겠지만 - 나이, 경제, 인종적인 사회 조건들 - 작은 의심이 사상적인 대결까지 가려다 말았다는 인상도 나에게는 준다. 아니면 내가 그들의 갈등을 공감하기에는 너무 어리거나, 이미 그들의 갈등 이후의 어떤 것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올바름인지에 대한 판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의심 사이의 간극 -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 알로이시어스 수녀의 고백을 통해 그 질문을 이끌어준다.

제임스… 난 너무나 의심스러워요. (울음)

신은, 우리에게 최후의 보루일지도 모른다.
신은, 어쩌면 의심 속에서 자라나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신을 답으로 사용하는 세상을 증오한다.
차라리 알로이시어스 수녀처럼 신을 하나의 담보 조건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신은 내가 그 반대에 설 때 딛고 가야하는 발판, 혹은 스스로를 더욱 강하게 지탱하기 위해 더 큰 힘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는 중력과도 같다. 그러나 진실로 신에 가까운 것은 제임스 수녀처럼 순수한 이들이다. 무용하고 사랑스러운 신… 믿음… 종교… 시스템과 일체화된 인간. 나 역시 그걸 긍정하지만, 그러나 그걸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건 믿지 못하겠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그건 세상이 변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의 변화는 항상 세상에 비해 느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