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는 갈등의 골이 깊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영화.
시대적으로도 케네디 암살 1년 후라는 배경을 통해 약간의 흐름을 읽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박정희가 암살된 이후와는 또 다른 분위기일 거라 생각하지만. 솔직히 실감은 잘 나지 않는다. 그래도 미국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시스템 자체가 무너지진 않았으니까.
가톨릭 교단이 운영하는 학교 - 가톨릭 자체만 해도 조직 사회인데, 거기에 사회화 과정까지 맡고 있는 학교라는 역할까지 더해진다면 - 그 안의 타이트함.
수녀교사의 몸에 손을 대면 안된다거나, 집무실에 남녀가 있게 되면 문을 살짝 열어 놓아야 한다거나, 볼펜으로 글을 쓰면 안된다거나… 지금 보면 하잘것 없는 규칙들은 - 물론 지금도 몇몇은 무의식적으로 남아있기도 하겠지만 - 어떤 지혜를 통해 만들어지고 전수되었던 것인지,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알로이시어스 수녀는… 꽤나 복잡한 성격이어서, 제임스 수녀보다 사랑스러웠고, 베일에 쌓인 폴린 신부보다 더 공감이 갔다. 어쩌면 신부는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 권위가 인정되는 자리에 있기에 좀 더 자유로운 포즈를 취할 수 있는 형편에 불과하지 않을까. 가톨릭에서 수녀는 보조자일 뿐이다. 그렇기에 제임스 수녀의 따뜻함이 더 빛을 내는지도 모르지만…
의심.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모두가 동의하기 때문이다. 물론 죄인이라는 낙인으로 추방당할 위험도 있지만, 최소한 반반의 확률이다. 그러나 의심은 공유하기 힘들다. 그것은 반대가 아니다. 단순불만에 가까워 보인다. 무엇을 믿어야 하나, 라는 의문에는 어떠한 권위도 도움이 되지 않고, 자신의 판단마저 작은 선입견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의심에 대한' 의심까지.
이 영화는 정황증거로만 진행된다. 가령 DNA 검사라도 했으면 한방에 밝혀질지도 모르는 진실, 혹은 당사자에게 직접 물었으면 될 진실에서 개연성을 쫒다가 수녀와 신부 그들이 처해 있는 존재 자체까지 갈등의 골을 뿌리내리게 한다. 여기에는 배경이나 상황적인 여러 고려가 있겠지만 - 나이, 경제, 인종적인 사회 조건들 - 작은 의심이 사상적인 대결까지 가려다 말았다는 인상도 나에게는 준다. 아니면 내가 그들의 갈등을 공감하기에는 너무 어리거나, 이미 그들의 갈등 이후의 어떤 것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올바름인지에 대한 판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의심 사이의 간극 -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 알로이시어스 수녀의 고백을 통해 그 질문을 이끌어준다.
제임스… 난 너무나 의심스러워요. (울음)
신은, 우리에게 최후의 보루일지도 모른다.
신은, 어쩌면 의심 속에서 자라나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신을 답으로 사용하는 세상을 증오한다.
차라리 알로이시어스 수녀처럼 신을 하나의 담보 조건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신은 내가 그 반대에 설 때 딛고 가야하는 발판, 혹은 스스로를 더욱 강하게 지탱하기 위해 더 큰 힘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는 중력과도 같다. 그러나 진실로 신에 가까운 것은 제임스 수녀처럼 순수한 이들이다. 무용하고 사랑스러운 신… 믿음… 종교… 시스템과 일체화된 인간. 나 역시 그걸 긍정하지만, 그러나 그걸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건 믿지 못하겠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그건 세상이 변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의 변화는 항상 세상에 비해 느리기 때문이다.
시대적으로도 케네디 암살 1년 후라는 배경을 통해 약간의 흐름을 읽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박정희가 암살된 이후와는 또 다른 분위기일 거라 생각하지만. 솔직히 실감은 잘 나지 않는다. 그래도 미국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시스템 자체가 무너지진 않았으니까.
가톨릭 교단이 운영하는 학교 - 가톨릭 자체만 해도 조직 사회인데, 거기에 사회화 과정까지 맡고 있는 학교라는 역할까지 더해진다면 - 그 안의 타이트함.
수녀교사의 몸에 손을 대면 안된다거나, 집무실에 남녀가 있게 되면 문을 살짝 열어 놓아야 한다거나, 볼펜으로 글을 쓰면 안된다거나… 지금 보면 하잘것 없는 규칙들은 - 물론 지금도 몇몇은 무의식적으로 남아있기도 하겠지만 - 어떤 지혜를 통해 만들어지고 전수되었던 것인지,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알로이시어스 수녀는… 꽤나 복잡한 성격이어서, 제임스 수녀보다 사랑스러웠고, 베일에 쌓인 폴린 신부보다 더 공감이 갔다. 어쩌면 신부는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 권위가 인정되는 자리에 있기에 좀 더 자유로운 포즈를 취할 수 있는 형편에 불과하지 않을까. 가톨릭에서 수녀는 보조자일 뿐이다. 그렇기에 제임스 수녀의 따뜻함이 더 빛을 내는지도 모르지만…
의심.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모두가 동의하기 때문이다. 물론 죄인이라는 낙인으로 추방당할 위험도 있지만, 최소한 반반의 확률이다. 그러나 의심은 공유하기 힘들다. 그것은 반대가 아니다. 단순불만에 가까워 보인다. 무엇을 믿어야 하나, 라는 의문에는 어떠한 권위도 도움이 되지 않고, 자신의 판단마저 작은 선입견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의심에 대한' 의심까지.
이 영화는 정황증거로만 진행된다. 가령 DNA 검사라도 했으면 한방에 밝혀질지도 모르는 진실, 혹은 당사자에게 직접 물었으면 될 진실에서 개연성을 쫒다가 수녀와 신부 그들이 처해 있는 존재 자체까지 갈등의 골을 뿌리내리게 한다. 여기에는 배경이나 상황적인 여러 고려가 있겠지만 - 나이, 경제, 인종적인 사회 조건들 - 작은 의심이 사상적인 대결까지 가려다 말았다는 인상도 나에게는 준다. 아니면 내가 그들의 갈등을 공감하기에는 너무 어리거나, 이미 그들의 갈등 이후의 어떤 것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올바름인지에 대한 판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의심 사이의 간극 -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 알로이시어스 수녀의 고백을 통해 그 질문을 이끌어준다.
제임스… 난 너무나 의심스러워요. (울음)
신은, 우리에게 최후의 보루일지도 모른다.
신은, 어쩌면 의심 속에서 자라나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신을 답으로 사용하는 세상을 증오한다.
차라리 알로이시어스 수녀처럼 신을 하나의 담보 조건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신은 내가 그 반대에 설 때 딛고 가야하는 발판, 혹은 스스로를 더욱 강하게 지탱하기 위해 더 큰 힘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는 중력과도 같다. 그러나 진실로 신에 가까운 것은 제임스 수녀처럼 순수한 이들이다. 무용하고 사랑스러운 신… 믿음… 종교… 시스템과 일체화된 인간. 나 역시 그걸 긍정하지만, 그러나 그걸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건 믿지 못하겠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그건 세상이 변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의 변화는 항상 세상에 비해 느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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