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29일 일요일

다원예술축제 - 자본론 제1권 / Festival Bo:m, Seoul - Rimini Protokoll Karl Marx: Das Kapital, Erster Band

마르크스의 자본론, 지난 세기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는 책, 난 읽어 본 적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마르크스를 성경처럼 받드는 태도를 혐오했다. 사회주의-진보-시위에 뛰어드는 대학생-선배들을 보며 난… 그들이 세상과 싸울 때, 반대로 나와 싸우고 싶었고, 나만의 세상을 갖고 싶었고, 아름다움 속에 살고 싶었다. 문학사를 빌려 말하자면 난 ‘참여’보다는 ‘모더니즘’에 가까웠고, 솔직한 심정으로는 제3의 무언가에 있고 싶었다. 그래, 그런 나의 포즈는 ‘하고 싶었다’로 끝났다. 물론 난 그들의, 이 세계를 주도하는 룰에 대항하는 그 모습에 반했던 적도 있었다. 다만, 나는 그러니까 더욱 스스로를 괴롭혀야겠다는, 내 방식을 더 강하게 밀고 나가야겠다는 또 다른 반항의 기제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 행사에 대한 내 움직임은 고원의 포스터에서 출발했다. 아주 오래전, 어느 무크지에서 그의 시를 본 기억이 있다. 다원예술이라는 이름도 그렇고 난 기본적으로 이런 태도에 대해서는 반갑게 생각하는 편이다. 단지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지만, 그건 애초에 기대감조차 갖지 않으면 별로 상관 없게 된다.

이 극을 보기 전까지 난 그런 태도였고, 어느 지인이 함께 보자고 끄집어주지 않았다면, 굳이 보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마르크스라는 소재도 그렇고, 아무래도 믹스 미디어에 그칠 것 같은 예감이.

난 연극을 좋아한다. 인생은 곧 무대. 그래서 더욱… 다른 장르의 예술에 비해서 연극에는 오히려 보수적인 기대를 갖는 편. 오로지 무대 위에 있는 배우의 발성과 몸짓으로 구현되는 어떤 세계의 느낌… 그것에 대한 집착이 있다. 그건 무용이나 음악으로 분화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그 자리는 거의 종교 이상의 신성함을 갖게 하는 장소. 음악이 나에게 종교라면, 무대는 나에게 천국이고, 문학은 나의 지옥이다.

현실을 나는 두려워했다.

난 몽상가 맞다. 그래서 더욱 이 극에 껄끄러움을 느꼈다. 회고적이라는 단죄를 씌울 순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나에게 기억될 것 같다. 너무 늙어버렸다. 이들은 다시 젊어지려 한다. 왜? 차라리 시마다 마사히코처럼 젊은 채로 늙어버리지 않았을까. 내 젊음은 죽었다. 지옥에 가버렸다. 부활할 수 있을까? 난 가끔 내 젊음을 불러낸다. 그를 모사해 보기도 한다. 내 아름다움은 아주 갸냘펐다.

아마 이 극을 텍스트만으로 보았다면 더 호감을 가졌을 거다. 이해할 수 없다. 무대에서 재현되어야만 했을까. 배우와 자본론 텍스트가 교감하는 현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비꼬아 말하자면 난 이 극을 보고 퇴역군인들의 야유회를 지켜본 느낌이었다. 그래, 노병은 죽지 않는다. 그런데,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무기다. 이 세상과 맑스는 어쩌면 양면의 동전으로 자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해결 가능한 문제가 있는 세계. 그래서 견딜만한 세상. 그들이 진심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거기에 어떤 순진함마저 엿보이기도 했고, 그들은 내가 이렇게 투덜대는 것 정도는 애교로 받아들일 정도로 자신들의 주제를 확실히 보여주지 않았다. 그게 편안함을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흐름으로 내가 조망할 수 없었던 이유일지도.

이 극은 또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무대가 아니다. 동원된 위트나 에피소드들은 전혀 환상적이지 않다. 마르크스와 함께 한, 마르크스로 보이는 세계의 흐름이라는 컨텍스트로 정리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정리하기에는 구멍이 너무 많다. 그 구멍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의 교집함이다. 가치 교환의 원리만이 유일원리일까. 그건 나에게 티켓값으로 차라리 자본론 책을 사서 보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는 반성까지 하게 만들었다. 사실 애초에 예술적인 오라를 기대해선 안될지도 모른다. 현대미술의 여러 속성들이 사용되긴 했지만, 전혀 효과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쓸쓸했다. 시위현장을 무대에서 지켜보는 기분은… 마르크스가 동물원에 있는 것만 같다.

거리를 매기기에도 애매했다.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누구의 이야기인지. 현실인지, 이상인지, 지나가버린 것인지, 다가올 것인지. 확 회고적이라는 낙인을 찍어 버리면 혐오할 수 있을텐데.

그리 맘에 들지 않는 무대였지만, 여러모로 고민거리는 많이 던져준 문제적인 무대. 일단 그정도로 ; 그런데 지금도 마르크스를 읽을 생각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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