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하우스콘서트. 솔직히 음악에 대해서, 박창수에 대해서 잘 모른다. 명확하게 설명할 정도의 이론적 틀은 미진. 하물며 감정적인 면은 더욱 드러내기 어렵다. 물론 소리를 언어로 설명하려는 어떠한 시도라도 결국은 실패할 터. 그러니 이 글을 이 무대에 대한 모사로는 보지 않기를. 나 역시 그걸 기대하지 않는다.
기억하던 박창수의 파괴력은 여전했다. 비단 음의 흐름 뿐만 아니라, 피아노라는 기계장치에서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어떠한 곳이라도 폭군처럼 사용한다. 글렌 굴드가 피아노를 애무하는 수준이었다면, 이 사람은 SM 타입이랄까. 한 시간 남짓 들었을 뿐이지만, 감성적인 면은 예전보다 더 배제된 것 같은 느낌. 고수는 풀줄기도 무기처럼 사용한다고, 손만 대면 뭐든 악기가 되는 경지라고 해야하나. 완전 그런 오라가 철철 넘쳐서 재미있었다. 게다가 그게 자기 등에 나이프를 꽂는 비약이 아니라, 아주 숙련된 장인이 불필요한 동작을 배제하고 극단적인 효율성을 추구한 상태로 느껴졌기에... 하지만 마이더스의 손은 어떻게 되었더라.
그에 반해 자신들의 무기에 총알을 장전해야 했던 다른 사람들. 에뮬레이터로 소리를 선택하고 조절하는 인터페이스를 거쳐야 했던 다른 두 명의 전자 음악가는 내내 끌려다니는 인상을 보였다. 물론 그 무대의 주인이 박창수라지만. 그래도 공연 시작에서 예고된 스코어 없이 즉흥 합주를, 대화를 한다 예고했으니 - 싸움으로 느껴졌지만 - 별로 핸디캡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리듬은 피아노가 주도했다. 나머지 전자음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구별이 가지 않았다. 임종우는 자신의 신디에 타악기와 같은 입력장치를 거쳐서 발생하는 소리로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기법을 주로 선보였고, 독일인은 미세한 음의 파동으로 다른 사람들의 소리가 그 위에 겹칠 수 있는 가능성을 유지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독일인이 맥북을 기울이면 소리가 변형되었는데,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공연 초입부터 사 분의 삼 정도는 내내 컴퓨터들만 보고 있었다. 피아노는 혼연일체된 소리들을 들려주고 있으니,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만, 다른 소리들의 ID는 알 수 없었기 때문. (지금도 정확히는 구별 못하겠다)
박창수는 모든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다. 단순한 도구라도 숙련되면 속도의 우위만으로도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물론 그의 피아노는 변신타입이지만;;) 설령 이미 시전되는 주제를 피아노가 뒤쫒아 반주를 하다가도, 순간적인 폭발로 자신이 주도권을 되찾아오곤 했다. 그걸 저지하고 흐름을 쇄신시키는 건 임종우의 날카로운 마찰음. 피아노가 숨을 고를 때 완충제 역할을 하던 맥북. 그 정도로 나는 그 무대를 기억한다. 다만 인상적이었던 점은 라이브 도중 피아노의 음을 복제하여 주제로 사용한 임종우의 소리가 무대를 지배하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미리 소리가 준비되지 않은 디제잉도 가능하다는 걸 실감했다. 기계적 모방이 있기에 박창수는 다른 소리를 내야 했고(낼 수 있었고), 소리들은 더 중첩될 수 있었다. 그 셋 사이 서로 균형을 어느 정도 이루고 서로를 방해하면서도 일정한 흐름을 유지해 나갈 때, 조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건 이 무대 자체에 부여된 기대감에 기대는 면도 있겠지만, 어쨌든 난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내내 즐거웠다. 특별히 누구를 응원하지는 않았다. 그냥 이들이 어떻게 소리를 만들어내는지 그게 더 관심이 갔다. 그래도 공연 후반부에 지켜본 박창수의 모습에서 더 설득력을 느꼈다. 아이러니... 기계에 딱 달라붙어서, 기계를 파괴할듯 다루는데, 기계는 가장 신속하고 평안한 소리를 들려준다.
여계숙의 무대는 의외로 흥미로웠다. 다소 신비주의 성향이 강할까봐 염려했었는데, 미니멀하게 보여져서 더 호감이 간듯,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프로세서의 출발점이 비슷했다. (언어는 그저 소리가 될 때까지 파편화 시키고, 단순한 소리들로 공간을 형성하려 하고, 일견 귀여워보이지만 상징을 담은 이미지를 선호하고, 신체를 중시하면서 그게 꽤나 자아도취적이고...) 사운드 자체에 다문화적인 속성은 많이 드러나는 건 재미있었지만, 오밀조밀한 재료들을 다양한 방향에서 꼴라주하는 방식은 나에게는 익숙하다. 다만... 난 목소리로 흐름이 유지되는 음악에 대해 콤플렉스 섞인 거부감을 갖고 있는데, 그녀는 이미 녹음되어 있는 자신의 목소리와 마이크로 내는 목소리로 메아리처럼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등, 단일한 목소리로 주입하는 방식을 쓰지 않아 편안하게 들을 수 있었다. 오히려 1부의 박창수에 시달렸더니, 2부의 그녀는 귀여우실 정도로... 그런 면으로는 이번 하우스콘서트의 프로그램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전체적인 톤의 높낮이도 그렇지만, 기계와 신체가 다른 방식으로 섞이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이크와 컴퓨터 앞을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퍼포먼스와 영상을 함께 보여주었다. 그녀가 보여주는 영상의 상징이 뻔하게 느껴졌을 때, 난 그녀의 동작을 주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상이 상징 대신에 움직임의 흐름을 보여줄 때 난 영상에 집중했고, 나중에 영상과 동작을 연결하려는 그녀의 시도를 보며... (이 분 약간 백치미 기질도 있구나 생각했고 -_- 그게... 까만 바탕에 하얀점들이 움찔하는 영상이었는데, 그 움찔하는 순간 목탁을 두드려야 하는데... 타이밍 못맞출 때가 더 많았던듯;) 이 사람은 참 무대를 즐겁게 사용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 개인적으로는 그저 또다른 자신의 목소리와 대화를 하고, 영상에 몸짓으로 답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걸 보고 있는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만 한다. 왜냐면 내가 아직 어느 쪽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는 그 교류들과 내 눈과 귀가 주시하는 것들 사이에서 어떤 감정을 떠올릴 수 있었는데, 하루가 지난 지금 와서 생각하려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영상이 보여주는 상징과 몸짓으로 표현된 그 무엇 사이의 갈등이 풀린 느낌...이었는데.. 그때의 체험을 아직은 육화하지 못한 셈. 아니면 그 체험이 자리한 공간을 비어있다고 느끼는 셈. 혹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셈. 무엇이 될지는, 조금 시간이 흐르면 떠오를 것이다. 그전까진 어쨌든, 계속해서 기계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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