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4일 토요일

유리피데스에게, 김한민, 새만화책, 2004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 뭣하러 해?

      끝내 그에게 대답할 수 없었다.
당신들은 대답할 수 있는가. 그가 돼지처럼 물질만
밝힌다고? 그러나 어리석은 자여, 함부로 돼지들을 업신여기지
말라. 우리 또한 조금도 다르지 않거늘. 위대한 사상가가
제 집 하인을 채찍질하고, 위대한 예술가가 진지한 물음에
하품하는 것을 못 본 체하려 하지 마라.

어디 한 번 그렇게 눈을 가려 보아라. 십 년을, 백 년을
그렇게 계속. 그 슬픈 그림자들은 쌓일 것이다.
그리하여 극과 산문과 시가 탑을 이룰 만큼 불어난
그 어느 훗날 그 거짓 또한 차츰차츰 자라나
모두를 고립시킬 것이다.

그때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으리라.

건대 반디앤루니스에서 래핑도 되지 않은 만화책을 보았다. 검고 낡은 표지. 잠깐 훑어봤지만 특별한 느낌은 들지 않았는데, 그래도 그림과 글에 작가 나름의 양식은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리스 극작가 얘기라 막연한 기대만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다 읽었을 때는, 현상태의 나에게는 결점조차 사랑스럽게 보일 책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던 그림책. 숀탠이나 D에서 다음 단계랄까. 좀 더 내가 하고픈 모델에 가깝다. 책 전체를 디자인한 듯이 보여 더욱 그렇다.

단순히 소통 단절의 비극이라고 하기에는,
현재 내가 고민하는 면,
예술이 현실에 무슨 의미가 있지?
모에가 최후의 황금비일까?
깊이와 표면...
그런 문제들이 겹쳐진다.

더불어 이 작가의 자화상이 반영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솔직한 태도 ; 쓸쓸함과 소심함. 그러면서 자신이 창조해낸 이야기들에 배후를 마련해 놓았다. 그건 깊이라기 보다는 우회로? 현실이나 역사적인 소재들과 자기가 창조해낸 세계의 연결고리가 있을 것만 같은, 최소한 그 상태의 쾌감을 아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의욕에 비해선 정제되지 못했고 - 작품 속 세계가 막연한 흐름으로만 이어진다, 혹은 내가 아직 그걸 체감할 정도로 민감하진 못해서? - 메시지에 비해... 인물의 묘사는 너무 단선적이다. 복합성을 띤 인물은 주인공과 그의 동생 정도. 그래도 관계망은 잘 조직된 느낌이지만. 물론 서사적인 진폭을, 전적으로 텍스트에 의존하지 않는 그림책에 바라는 건 지나칠 지 모른다.

그림에 있어서, 화면의 이동은 효과적인 흐름을 만들어내나 세세한 동작, 인물의 감정과 표정의 묘사에 디테일이 부족한 것처럼 보여진다. 물론 그런 단점을 컷의 구분, 색조의 변화로 좀 더 그림의 질감을 살려서 충분히 커버하고 있다. 그건 극사실주의가 아니라, 인상파 그림처럼 느껴진다. 아마 색연필이 더욱 그런 느낌을, 원경에는 좋지만, 근경에는 불리하다.

그래도 자신의 주제를 폭발시킬 지점에 대해서는 확실하다. 구조적인 아름다움마저 느껴질 정도. 또 의인화한 캐릭터와 가면을 쓴 인간을 대비시킨 표지에서 강조되지만, 작품 내에서는 사람 형상과 동물 형상의 캐릭터의 구분이 그리 실감나게 와닿지는 않았다.
(모에 요소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인물 성격을 쉽게 드러나게 하는 효과를 노린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가상성에 대한 상징일 수도 있고, 멀리 나가면 애니메이트에 대한 긍정...? 다음 작품을 보면 실감할 수 있을까)

메시지의 전달 역시 내가 고민하는 부분인데, 이 작품은 그 실패로 인한 희비극을 드러내고 있지만, 동시에 편지라는 매체를 사용하여 이 작품 자체가 하나의 매체임을,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무용하다는 것을, 넌지시 강변하고 있다. 그 압박감을 - 작품과 현실을 이어주는(주인공의 고민, 작품의 주제, 현실의 부조리) 작품 내 소재로 자연스럽게 녹여낸 부분은 마음에 든다.

대사와 그림의 비율도 필요에 따라 조절하는 감각.
표지 디자인, 책의 구성, 챕터 분류, 책뒤편과 날개의 공간 모두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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