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진동이라는 단어는 자유로움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어떤 소리나 빛의 주파수, 혹은 결박당한 상태의 몸부림이다. 그리고 리듬이며 축적된 에너지의 형태이기도 하다 ; 여기에 다소 에로틱한 상상을 덧붙이면 그건 채찍이 되고, 물리학을 끌어들인다면 가는 끈이 된다. 아마 그 이미지가 나에게 더 이상은 잘게 쪼개지지 않는 마지노선일 것이다.
내용과 형식은 언제나 다투고 있었다.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처럼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묻는 쪽은 안타까울지 모르지만, 그 둘 사이는 사실 제대로 동침한 적이 과연 있을지.
“보이지 않는 미디어 아트” - 아마 제목으로 생각한듯.
Sigraf 2002 2000에 의한, 미디어 아트의 가능성을 예찬하며, 가능성 이외의 것들을 반성하는 책.
마주본 거울 사이에 있는 사람, 겹겹이 거울 속 거울.
나는 미디어 아트가 거울 속 거울 속 거울들 그 똑같은 모습들의 나열에서 어떤 예기치 않은 변화를, 돌연변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물론 그 돌연변이가 거울 전체로 퍼져나갈 수도 있지만.
당시는 닷컴 버블이 심화되는 시기 - 확인 필요함. - 여파는 있지만, 아직 구글이 태동하기 전. *당시 최고는 야후 - 혹은 알타비스타. 국내 컨텐츠는 네이버.
보이지 않는 모터 -> 보이지 않는 컴퓨터->유비쿼터스
우선 웹의 역사에 대한 간결한 정리
그것의 현재 위력 - 증강현실이라 말해지는 루브르부터 포르노그래피티까지(가능성이지만)
오타쿠 상품들엔 구현된 캠으로 촬영될 때 나타나는 아바타.
단순히 관찰- 관객- 조망이 아닌
사용 침입 참여
인터페이스 너머는 실재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실재로 착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니다.
인터페이스다.
왜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한가, 왜 인터페이스는 그렇게 만들 수 있는가.
새로운 시각 미디어이자 언어 미디어일 수 있다는 제록스 파크의 입장
PC가 새로운 시각 경험이 아니라 상징 조직자…
나는 모든 미디어를 긍정해, 그게 서커스든 포르노든 무엇이라도.
그러나, 자신의 문제는 어떻게 해도 해결되지 않아.(오히려 너무 공감각적으로 긍정하기 때문?
연결된 맥락과 감정들이 너무 많아)
매체가 꼭, 프로그램일 필요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미디어 말이죠.
세계의 재구성 - 독재
있는 그대로의 세계 - 독재, 혼란
모두 1인에 의한
그것을 보고 있는 나를 의식하지 않는 것.
그것을 보고 있는 누군가를 의식하는 것.
“보고 있다”를 “만든”으로 바꾸어도 좋다. 어차피 우리가 보는 세계는 우리 두뇌가 만들어낸 것이니까.
4월 2일
인터페이스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만일 백지 이상의 현명함을 지닌 틀이라면…
난 그걸 이용해야 하고, 더 정확히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지.
투명성이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똑같은 원본을 지향한다면,
반성성은 모든 관찰자의 눈이 되려는 입장.
전자는 맥락을 내재화하고 함축시킨다.
후자는 맥락을 드러내고 가변성을 추구한다.
결국 관객을 변화시키려는 의도와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의도로 나누어지는데
(물론 의도대로만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 미의식, 취향…)
다만, 반성적인 창문은 거울을 집어삼킬 수 있다. 반대?
그때는 종교가 된다. 원본을 통해서만 반성을 하기 때문이지.
반성성은 미디어를 세계로 여기지만,
투명성은 미디어 배후의 것만을 세계로 여긴다.
이것은 두 성향이 지닌 본래적 특성이 아니다.
그저 결과물일 뿐이다.
(물론 내 말이 반성성을 통해 투명성을 이해하려는 나의 독법-욕망일지도 모른다.)
관련지어서 생각할 부분은, 신체로 그것이 어떻게 현현하는가.
내가 살아가는 현실과 내가 바라는 무대가 어떻게 일치되는가.
내가 두려워하는 지옥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그림자들이 어떻게 나를 덮어씌우게 되는가. (그것이 병인가)
여러 신화들 - 투명성의 신화 상호작용의 신화 융합의 신화
보이지 않는 미디어 아트, 진동_오실레이션, 제이 D.볼터 & 다이앤 그로맬라, 미술문화
Windows and Mirrors: interaction design, digital art, and the myth of transparency by Jay David Bolter and Diane Gromala
아름다움과 기술, 다른 말로 아트와 테크네 사이를 연결하고픈 당신이라면, 이 책은 당신과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의 견문록이다. 통칭 미디어 아트라 일컬어지는... 그러나 미디어아트가 정말 존재하는가? 우리 눈에 보이나?
가령 예술을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임상실험으로 본다면, 그 이상향은 지금도 충분히 이뤄지고 있지 않을까? 개인이 다룰 수 있는 정보의 질과 양이 상승한 현실은, 모두를 예술가로 보이게 하면서도, 예술의 오라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아직 낭만적이고 계시적인 예술의 운명(혹은 비극성)을 그리워하는 당신이라면, 만족감과 서글픔을 동시에 갖는, 누군가의 말처럼 행복을 그리운 가치관이라고 들으며 그에 반박할 수 없는 입장은 아닌지.
그렇다면 이 책은 당신이 의지하고 있던 자의식을 산산조각내고 그 조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는 하나의 파괴식이 될 것이다. 여기서 나는 그 역시 재미있는 시뮬레이트라고 생각한다. 아직 당신이 특별히 내세울만한 자아나 기술이 없다고 해도, 이 책에 소개된 현실들을 좆아서 그려나갈 수 있다면, 스스로가 어떤 과정에 있는지는 깨달을 수 있을테니까. (물론 그 정렬방식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왜냐면 이 책은 시그래프 2000(http://www.siggraph.org/s2000)의 연장선에 놓인 하나의 체험적인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당 행사의 큐레이터와 저명한 미디어 이론가의 공동저술로 밸런스가 잘 잡힌 사후 보고서라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당신이 세기말 닷컴버블의 붕괴 이후 득세하는 구글의 영향력이나 작금 유행하는 SNS들 같은 플랫폼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또한 이제는 흔한 말로 느껴지는 미디어아트라는 현상에 대해 아직 애정을 갖고 있다면, 그리고 현업에서 기계와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길을 닦고 있다면, 마지막으로 타인에게 보여지는 외관과 자신의 창조과정 사이에 있는 불일치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면, 저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다시 이유를 덧붙이자면, 이들의 테마들 ; 창문 - 거울, 투명성 - 반성성, 형식 - 내용, 그 대비들은 우리가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도돌이표처럼 언제라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치하게 말하자면, 그들 사이의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두 주인공처럼, 현실의 변화보다 인간의 변화는 느리기 때문에.
그래도 우리는 저자-감독이 촬영한 몇몇 작품들을 통해 생물학적 성차처럼 당연하게 갈라놓여진 상반된 가치들이 동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게다가 각각의 커플들은 아름답고, 갈등구조를 헤아려보는 재미까지 있다. 물론 이제 그들을 늙었는지도 모른다. (2000년의 행사, 2003년의 원서, 2008년의 번역) 다만 우리는 그 모습에서 우리의 현재 모습을 반추하고, 그토록 그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낸 영상을 보는 감독의 시선과 촬영노트를 통해, 그들이 가졌던 이상과 가들의 이상이 어떤 흐름을 통해 선언되고 가시화될 수 있었는지 짚어볼 수는 있다.
그렇다고 마냥 그 흐름이 낭만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문화적이고, 사실은 상업적이며, 어쩌면 정치적이다. 이 책이 강조하는 반성적은 디자인은, 결국 사용자로 하여금, 나는 이 멋진 인터페이스를 경험하긴 하지만 이것이 진짜 나는 아니다, 라는 의식을 치솟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결론은 사용자의 몫이고, 이 글을 읽는 사람의 선택이다. 그걸 의식하는 글쓰기의 모습은 스스로의 프로세스를 남김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그저 제스처에 불과하더라도) 그런 글쓰기는 실제로 존재했던 어떤 사건의 기록을 통한 보존이나 유통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글쎄, 이것은 내가 이 책이 언급한 물질적 글쓰기라는 테마에 호도된 탓일까. 마치 꿈 보다 해몽이라는 말처럼. 여기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본다 ; 미디어 아트는 정말 존재하는가?
이제 나는 존재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그려내고 있는 미디어아트의 리터러시는, 이제 너무나 오래돼 본능처럼 여겨질 정도로 확고부동한, 기술-예술-인간을 아우르는 어떤 신화로 대표되는 세상 저편의 리터러시를 해체하며 떨어져나간 조각들과 오히려 상흔들이 연결되며 구성됐기 때문이다. 이 역시 선언이 되고, 신화가 되고, 어여쁜 아이돌이 될지도 모른다. 그게 우리의, 아니 나의 현실이라면 그 역시 (덧붙여진) 어떤 선언이 될까? 여기서 이 책에 대한 글을 마쳐야겠다. 나머지는 살과 피를 지닌 사람의 몫이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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