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이후로 빠가 될 사람은 없었는데, 이 사람이라면 그렇게 될지도... 제대로 이해해서 공감해서 좋은 게 아니라, 그냥 문체의 울림이 좋다. 다만 니체는 원래 당김음을 잘 쓰고 번역을 해서 근육은 좀 망가지더라도 뼈대는 워낙 단단하니 우려내는 맛이라도 있었는데, 이 사람 글은 번역하다 자기 꼬리를 무는 문장이 돼버리는 프랑스에다 원래 스타일도 여백으로 환기되는 식이라, 에센스만 뽑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데카르트로 대변되는 결정론적 시각이 현실과 동떨어질 경우의 위험성에 대해 그는 염려한다. 또한 데카르트의 접근법 자체가 지나치게 주체와 대상을 분리시켰다는 것을 지적한다. 사실 그런 분리 자체가 이미 나에겐 잘못된 언어로 보이지만, 메를로-퐁티는 지금 내게 마조히스트로 남아있으며, 사실 현상학이라는 이론 자체가 선언상으로는 철이 지나고 한창 기술적으로 실현되는 단계라고 생각하니까, 별 상관 없겠다. 다만, 그래도 아직 이 책이 유효하다면 기존 세계를 이루던 관념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고전이 되고 진보의 한 단계로 인정되는 현실에서 적의 문법대로 복수할 수 있는 카미가제 역할로는 재밌겠다고 본다.
혹은 시지각을 종교적인 경지까지 승화시킬 정도로 그에 대한 사유를 진행하면서, 시지각 자체의 한계를 폭발적으로 드러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직 내가 그에 대해 읽은 건 이 책과 다른 소논문이 추가될 뿐이니, 아직은 기대감일 뿐이다. 또한 실행자의 입장에서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도 말하고 싶다. 이 책도 그렇고 곰브리치 경의 미술사를 보면서도 그랬는데, 동서양의 차이가 확실히 있다는 걸 느꼈다. 나 역시 메를로-퐁티의 주체와 객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심지어 동일할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기 보다는 그걸 내가 바란다고 해야)하지만, 주체가 객체를 보면서 선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그 모든 경계들이 무화되지 않을까. 어쩌면 그게 예전에 본 스기우라 고헤이의 형태의 탄생에서 말한 카타에 치가 깃드는 방식인데, 물론 메를로-퐁티 역시 관찰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방식이 주가 되어 있고, 나 역시 그들의 책을 토대로 말할 뿐이지만, 경험적으로는 다르다는 거다. 나와 사물들 각각의 거리도 시점에 따라 일정하지 않지만, 일대일 관계만 보더라도 나와 사물의 경계와 사물과 나의 경계는 일치하지 않는다. 서로의 교집합이 내 눈에 빛을 통하여 드러날 때, 그 경계는 스푸마토 같은 걸로 바꿔 말할 수 있는 그런 가장자리의 선일까. 아마 내가 선에 대해서 정리하지 못한 부분일 거다. 혹은 아예 오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왜냐면 이 사람 글쓰기 스타일이 자신의 사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조히스트라 그런 강력함을 만나면 좋긴 한데, 차라리 츤데레면 받아줄만 한데 이 사람은 백치미 같다.같은 레벨의 고민을 오랫동안 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예 이 사람의 사유에 절대적으로 동의해야만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 묶여야 저항이라도 하지 그런 느낌? 책이 자그마해서 필사해도 좋을 정도인데, PDF로 만들어 놓으려다 시간이 없어서 다는 못했다. 좀 신변이 정리되면 하루 날잡아서 해야겠다.
요즘 무의식적으로 특정 감각의 막장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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