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내 제일 친한 친구는 도살자
그는 일곱 자루의 칼이 있었지
오랜만에 눈이 그친 어느 겨울
길에는 눈이 잔뜩 쌓여 있었고
발자국 없이 그는 찾아왔지
언제나처럼 일곱 자루의 칼만 가지고
그는 외출할 때도 칼을 놓지 않았어
외투 안을 들킬까봐 무서워했지만
그럴수록 이웃에게 반갑게 인사했지
애써 피냄새는 지우지 않은 채
그는 나를 꼭 안아 주기도 했어
처음 본 날처럼 손은 차가웠지만
겨울은 길었고 길은 두꺼워졌어
사람도 자동차도 없는
대로에서 우리는 술을 마셨지
눈은 그치지 않았고 나는 기침을 했어
그는 자기 외투를 주었고 나는 그를 찔렀지
우리는 웃었어
내 제일 친한 친구는 도살자
그는 일곱 자루의 칼이 있었지
오랜만에 눈이 그친 어느 겨울
길에는 눈이 잔뜩 쌓여 있었고
한가운데 눈사람 하나 서있었지
모두들 눈사람처럼 웃어 보더군
겨울은 길었고 길은 두꺼워졌어
사람들은 서로를 잊어갔고
눈사람은 차츰 뚱뚱해졌고
그의 얼굴은 점점 없어졌지
일곱 개의 칼자루가
하나하나 뽑혀나갔거든
20023262 김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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